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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패션]샤넬도 프라다도 ‘코리안 워킹’에 흠뻑 빠졌다

입력 | 2007-06-15 03:02:00

혜박, 장윤주, 한혜진(왼쪽부터). 혜박과 한혜진은 뉴욕 밀라노 파리 컬렉션을 누비며 세계적인 톱 모델로 성장하고 있다. 장윤주는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가 많은 패션모델이다. 세 모델은 최근 구호 패션쇼에 나란히 등장한 데 이어 애경 케라시스 광고모델로 함께 출연했다. 사진 제공 애경 케라시스

지난달 29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구호 패션쇼. 맨 앞 가운데 두 명이 한혜진과 혜박이다. 사진 제공 제일모직


▼세계로 향하는 한국모델… 그들의 성공비결은▼

지난달 29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구호’의 패션쇼. 여느 때보다 많은 연예인과 패션업계 관계자들이 몰려들었다. 톱 모델이 등장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혜박(22·한국이름 박혜림), 한혜진(24), 장윤주(26). 특히 혜박과 한혜진은 뉴욕 밀라노 파리 컬렉션을 누비며 세계 최고 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급 모델이다. 샤넬, 루이비통, 마크제이콥스, 구찌 등 유명 브랜드의 컬렉션에서 당당한 워킹으로 사랑받고 있다.

장윤주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닥스의 25주년 기념 패션쇼에도 출연한 그는 CF 모델로도 주가를 올리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 밀라노 파리에서 한국 모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 패션쇼에 서는 동양 모델은 2, 3명 선. 그나마 일본 중국 모델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국내 유명모델들이 한번쯤 해외무대의 문을 두드렸지만 세계적인 톱 모델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재미교포인 혜박은 물론 ‘토종’인 한혜진 송경아(29) 김다울(18) 등 한국 모델의 워킹이 세계로 향하고 있다.

○ 코리안 워킹, 뉴욕 밀라노 파리로

“샤넬 오디션은 기다리는 시간만 4시간이 넘어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모델들이 모두 몰리니까요. 제가 도착한 날엔 비가 억수처럼 내려 왠지 불안했어요.”

기우(杞憂)였다. 올해 초 2007-2008 샤넬의 가을겨울 컬렉션 오디션을 찾은 한혜진은 그 자리에서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었다. 지난해 가을 해외무대에 데뷔한 뒤 사실상 처음으로 거둔 쾌거였다.

그는 올해 뉴욕의 마크제이콥스, 밀라노의 구찌 아르마니, 파리의 샤넬 루이비통 등 수십여 개의 대형 패션쇼에 출연했다.

“운이 좋다고 하지만 그만큼의 노력도 있었어요. 한국에서 8년이나 모델을 했으니 신인에 비해 노련했죠. 2년 동안 영어공부를 철저히 했고요.”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알아주는 베테랑인데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거절당하는 데 익숙해져야 했다. 해외 디자이너들은 냉정하다. 오디션에서 합격시켰어도 더 좋은 모델이 나타나면 가차 없이 교체한다. 뉴욕컬렉션은 모델료도 없건만 한번만 무대에 세워달라는 모델이 천지였다.

한혜진은 “동양 모델이라 쇼의 메인 그룹에 끼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크다”면서도 “그래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좋은 이미지를 남겨 세계 패션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한혜진에 앞서 동양 모델 붐을 일으킨 주인공은 재미교포 혜박이다. 그는 한번도 동양 모델을 쓰지 않았던 샤넬과 프라다의 전통을 깼다. 세계적인 모델 포털 사이트인 모델닷컴의 인기 순위 21위로 대중적 인기도 높은 편.

13세 때부터 모델로 나선 18세 소녀 김다울도 선배들의 길을 따라 샤넬 DKNY 등 굵직한 쇼에서 활약하고 있다.

○ 한국 모델의 경쟁력

“해외 디자이너나 캐스팅 감독들은 모델의 국적은 잘 몰라요. 그저 모델로서 경쟁력이 있느냐가 중요하죠. 최근 한국 모델들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그들의 경쟁력이 궤도에 올랐다는 뜻입니다.”

모델 매니지먼트 업체인 에스팀의 김소연 이사는 송경아, 한혜진, 김다울 등을 키워냈다.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다’고 한 가수 박진영의 말에 공감한다고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실력을 키우면 통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한국 모델의 경쟁력을 어떻게 볼까.

▽신체조건=패션쇼 준비를 하던 제일모직 정구호 상무는 혜박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개 표준 사이즈 옷을 모델에게 입혀보면 어떤 부분은 남고 어떤 부분은 작아 핀으로 체크해 옷을 다시 만든다. 혜박은 달랐다.

제일모직 여성복사업부 김정미 구호 팀장은 “핀 하나 필요 없는 완벽한 표준 몸매였다”며 “글로벌 모델은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모델의 경쟁력은 누가 뭐라 해도 신체조건이다. ‘신이 내린 몸매’가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패션쇼에 서기 어렵다.

에스팀 김 이사는 “한국인의 몸매가 서구화되면서 ‘동양인은 숏다리’라는 통념은 옛말이 됐다”며 “키, 몸의 비율, 피부색 등에서 서양 모델과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동양적인 분위기가 통한다. 옆으로 긴 눈, 검정 생머리, 작은 입 등이 요즘 뜨는 한국 모델의 특징이다.

한혜진은 “자연스러운 동양인의 얼굴이 매력적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고 소개했다.

▽언어능력=혜박은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교포다. 김다울은 싱가포르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한혜진과 송경아는 해외진출을 위해 2년 동안 영어공부에 매진했다.

과거 동양 모델은 의사소통이 안 되고 소극적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해외경험이 풍부한 젊은 모델은 다르다. 미리 준비한 영어실력은 자신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무기가 됐다.

▽끼=첫 해외무대에서 떨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한혜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모델 경력이 오래됐는데 뭐가 떨리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도 뉴욕에서도 ‘기 안 죽기’로 유명한 모델이다.

나이가 어린 김다울은 더 적극적이다. 완벽한 ‘표준몸매’라기보다 개성파에 가까운 어린 모델이 상처받을 것을 염려한 소속사 측은 해외진출에 신중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그는 당당했다.

“완전히 바닥에서 시작하고 싶어요. 거절당하고 상처를 받아야 성장하죠.”

김다울은 자신을 떨어뜨린 오디션 담당자를 찾아가 뭐가 문제냐며 집요하게 묻고 따졌다고 한다. 독특한 이미지를 개발해 업체 담당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오디션 장에 드러눕겠다”고 농담하더니 결국 샤넬 쇼에도 출연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아시아 시장=아시아는 해외 유명 브랜드의 주요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루이비통의 절반가량이 팔린다는 일본을 비롯해 중국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브랜드 업체들이 아시아 특수를 노리고 만든 옷과 상품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상황. 그래서 동양 모델들은 패션업체의 광고에 속속 얼굴을 내밀고 있다.

혜박은 미국 패션브랜드 ‘갭’의 간판모델로 세 시즌째 기용되고 있다. 돌체앤가바나, 마크 제이콥스의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국내 모델 매니지먼트 회사가 체계화된 점도 한국 모델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한 관리와 사전준비, 해외 네트워크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국내 패션-광고업계 ‘스타★모델 모시기’ 열풍▼

지난달 28, 29일 국내 패션업계의 라이벌 기업인 LG패션과 제일모직이 대형 패션쇼를 열었다.

LG패션 닥스는 김원경 송경아 장윤주를, 제일모직 구호는 혜박 한혜진 장윤주를 무대에 세우며 경쟁을 벌였다. 두 업체 모두 패션모델이 패션쇼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판단에 따라 스타모델 캐스팅에 총력을 기울였다.

재미교포 모델 혜박을 캐스팅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미국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운영하는 트럼프 에이전시의 대표모델. 트럼프 에이전시 측은 구호가 혜박의 명성에 어울리는 브랜드인지 알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제일모직 여성사업부 김정미 구호 팀장은 “패션지 보그 코리아 관계자들이 나서주는 등 혜박을 ‘모시기’ 위한 물밑 작업이 상당했다”며 “그가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혜박은 결국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 패션쇼에 처음 출연했다.

패션모델들이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자 역으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패션모델이 광고시장을 장악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애경 케라시스 샴푸는 최근 탤런트 고소영과 계약이 종료되자 혜박 한혜진 장윤주를 새 모델로 내세웠다. 모델료는 5억 원대.

‘스타일 북’이라는 책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장윤주는 헤라, 미닛메이드, CJ홈쇼핑, 국민은행 등의 광고모델로도 활동했다. ‘뉴욕을 훔치다’의 저자 송경아도 김치냉장고 딤채에 이어 식품브랜드 폰타나 광고 모델을 맡고 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