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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강 미니기업]패러글라이더 회사 ‘진 글라이더’

입력 | 2007-05-01 03:01:00

올해 3월 프랑스에서 열린 진글라이더 후원의 ‘스피드 플라잉’ 대회에서 한 스키어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내려오고 있다. 사진 제공 진글라이더

패러글라이더의 날개는 안전성과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진 글라이더’의 송진석 사장(앞)과 직원들이 날개에 공기를 불어넣어 봉제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용인=신원건 기자


지난달 CNN 등 세계 주요 방송들은 프랑스에서 열린 ‘스피드 플라잉’ 세계대회를 소개했다. 스피드 플라잉은 스키와 패러글라이딩을 접목한 신종 레포츠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깎아지른 듯한 눈 덮인 산을 나는 듯 미끄러져 내려오는 스키어의 모습은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대회의 공식 후원사는 한국의 중소기업 ‘진 글라이더’다. ‘스피드 플라잉’은 스키를 타고 산을 내려오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 하늘로 솟구쳐 활공해야 하기 때문에 순간 조작이 가능한 고난도 패러글라이더 제작 기술이 필수다.

이 회사는 이런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품화하고 세계대회까지 열었다. 세계 패러글라이더 시장을 제패한 ‘진 글라이더’가 세계가 주목하는 신기술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 마니아가 인정한 ‘메이드 인 코리아’ 명품

1998년 설립된 ‘진 글라이더’는 국내 패러글라이더 시장의 80%,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패러글라이더 제조업체. 이 회사는 2001년에 처음 패러글라이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뒤 계속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계의 패러글라이딩 마니아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높이 평가할 정도다.

이 회사는 바람의 저항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안전한 글라이더로 세계 시장에서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진 글라이더’를 탄 국내외 패러글라이더 선수들은 1999년 이후 6년 연속 세계 패러글라이딩 선수권 대회를 제패했다.

지난달 경기 용인시 ‘진 글라이더’ 본사. 담조차 없는 평범한 2층 건물의 사무실 입구에는 패러글라이딩 장비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이 회사의 송진석(50) 사장은 “바람만 좋으면 제품 테스트를 위해 인근 야산으로 패러글라이딩을 나간다”고 말했다.

‘진 글라이더’ 이름은 송 사장의 이름에서 따왔다. 패러글라이더 날개 부분에 넣는 브랜드도 하회탈 등 한국적인 문양 일색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 정도로 제품의 품질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하지 않고, 가격을 깎아 달라는 업체와 거래하지 않는 게 이 회사의 경영 철학이다.

○ ‘5000시간 테스트’로 검증한 장인 정신

패러글라이더는 원단을 가져다가 실로 꿰매 만드는 봉제 산업에 속하지만 대당 판매 가격은 300만∼500만 원에 이르는 고부가가치 항공용품이다.

본사 직원 23명에 불과한 이 회사는 지난해 7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도 매년 25∼30%에 이른다.

본사 건물 지하의 연구개발실. 직원 서너 명이 송 사장이 며칠째 밤을 새우며 설계를 막 끝낸 신제품 패러글라이더 날개 도면을 이용해 시제품을 제작하고 있었다. 올해 선보일 신형 패러글라이더다.

패러글라이더의 핵심은 저항을 줄이면서 바람의 힘을 극대화한 설계 능력과 꼼꼼한 봉제기술. 일곱 장의 얇은 천을 겹쳐서 만드는 패러글라이더의 날개 부분의 박음질이 조금이라도 성기면 천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추락할 수도 있다. 국내의 앞선 봉제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글라이더를 타기 시작한 송 사장은 제품 디자인부터 시운전까지 직접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송 사장을 포함해 7명의 국내외 테스트 파일럿이 5000시간의 시험 비행을 거친 뒤 비로소 ‘진’ 브랜드의 로고를 단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직접 타봐야 고객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실제로 본사 직원의 80% 정도가 패러글라이딩을 즐긴다. 용인에 본사를 두는 이유도 패러글라이딩 시험장과 가깝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철저히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른다. 패러글라이더 종주국인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마케팅 담당자에 프랑스인을 영입했다. 한국의 장인정신을 형상화한 브랜드 전략도 그의 아이디어다.

세계 50개국에 70개 딜러 망을 운영하고 있는 이 회사는 매년 유럽 등 주요 10개국의 딜러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워크숍을 연다. 딜러의 노하우를 빌려 세계 시장 동향을 함께 분석하고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 매출액의 15% 연구개발에 투자

진 글라이더는 매출액의 15%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한다. 2004년 3.7kg의 세계 최경량 패러글라이더 ‘예티’를, 지난해에는 ‘스피드 플라잉’ 패러글라이더를 독자 개발했다. 세계 1등에 올랐지만 연구개발과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체코, 중국 등 후발 경쟁사의 추격을 뿌리치려면 차별화된 제품과 시장 개척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2003년 세계대회에서 ‘진 글라이더’ 제품을 모방한 제품을 선보인 체코의 한 업체가 지난해 세계 선수권대회 종합 우승을 거둘 정도로 기술 격차가 줄고 있다.

‘진 글라이더’는 최근 항공공학을 전공한 신입사원 등 6명으로 개발팀을 꾸렸다. 수작업으로 하던 패러글라이더 설계도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처리하고 있다. 경쟁사가 쉽게 베끼지 못하도록 설계 방식을 바꾼 것이다. 중국 현지 공장에 이어 개성공단에도 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스피드 플라잉’ 제품을 내놓은 것도 유럽의 레저 문화를 이용해 패러글라이딩 비수기인 겨울철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 제품은 올해 초부터 3월까지 400여 대가 팔릴 정도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송 사장은 “‘스피드 플라잉’ 등 레저 문화를 공략해 올해 1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용인=박용 기자 parky@donga.com

● 송진석 사장의 도전 정신

인라인 신고 車매달려 실험…‘스피드 플라잉’ 제품 첫 개발

송진석(50) ‘진 글라이더’ 사장은 한쪽 다리가 불편한 4급 장애인이다.

고교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대학교 3학년 때 글라이더를 타다 추락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얼굴 한쪽에 철심을 박는 대형 사고도 당했다. 하지만 신체적인 불편도, 대형 사고의 아픔도 날고 싶은 그의 꿈을 꺾지 못했다.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한 그는 현대중공업에서 선박 설계 업무를 하다가 1983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글라이더를 마음껏 타고 싶다는 꿈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글라이더 설계 기술을 익힌 그는 1992년 귀국해 국내 업체의 글라이더를 디자인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름을 걸고 혼(魂)을 불어넣는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998년 그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다. 사업 초기 시장 규모가 큰 초보자용 시장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조종이 서툰 초보자의 경우 난기류를 만나 글라이더의 날개가 접힐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패러글라이더의 원리를 개발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날개의 복원력을 높이는 방법을 문의했지만 직접 실험해서 알아보라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그는 기상조건이 나쁜 날을 골라 일부러 시제품 테스트에 나섰다.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50여 개 시제품의 날개 복원력을 일일이 테스트해 결국 해답을 얻었다. 동독 출신의 테스트 파일럿이 비행 도중 추락해 사망하는 아픔도 겪었다.

‘상품이 아니라 문화를 판다’와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마땅한 실험장이 없어 놀이공원 주차장에서 스키 대신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자동차에 매달려 실험한 끝에 세계 최초로 스키와 패러글라이딩을 접목한 ‘스피드 플라잉’용 제품을 개발한 것도 그의 도전정신의 결과다.

용인=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