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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창혁]노는 관용차

입력 | 2007-04-28 03:02:00


노태우 정부 때까지만 해도 3부 요인의 관용차량 번호판에는 ‘0’이 두 개씩 들어 있었다. 대통령은 1001, 국회의장은 1002, 대법원장은 1003, 헌법재판소장은 1004, 국무총리는 1005호였다. 국가 행사 때의 의전(儀典) 서열과 같았다. 각 기관에서는 모두 ‘1호차’로 불렀다. 무전(無電)으로 “1호 떴다”는 말이 떨어지면 청사 현관의 경비들이 바빠졌다. 눈에 확 띄는 번호판과 운전기사가 딸린 관용차는 권력과 신분의 상징이었다.

▷관용차 구설수도 많다. 모 국회의장은 관용차를 타고 선거운동을 하다 시장 상인들의 눈총을 받았다. ‘마님’이 남편의 관용차를 개인 용도로 쓰다가 가십에 오르는 일도 많았다. 야당 몫으로 추천받은 한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지난해 인사청문회 때 여당 국회의원에게서 “후보자 신분에 불과한데 왜 2799cc짜리 재판관 관용차를 타고 왔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보다 못한 야당 의원이 “여당에서 자꾸 문제를 삼으니 그냥 택시 타고 가시라”며 여당 의원의 시비를 막고 나섰다.

▷재정자립도가 15%도 안 되는 지방자치단체 65곳 중 44곳의 단체장이 3000만 원이 넘는 ‘장관급 관용차’를 타고 다닌다. 아직도 구태의연한 ‘1호차 의식’을 못 버리고 1001 번호판을 쓰는 단체장도 13명이나 된다. 교통경찰이 시장 군수 차를 몰라봐서 생길 수 있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찬기 부산 동래구청장처럼 10년 넘은 2000cc 포텐샤를 타고 다니면 지역주민의 존경을 더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시장 군수는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닐 일이 많은 바쁜 자리다.

▷출퇴근 때만 쓰고 하루 종일 관청 주차장에 서 있는 관용차들이 더 문제다. 법원에는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이 150명이나 된다. 법관들은 일단 출근하면 기록을 보거나 재판을 하느라 공무로 나들이할 일이 거의 없다. 종일 서 있는 ‘차관급’ 차량에도 운전기사가 어김없이 배치된다. 차라리 관용차와 운전기사 운용비를 월급에 보태 주는 편이 가계와 나라 살림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