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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타결]자동차 2990만→2840만원…오렌지 7000→4660원

입력 | 2007-04-03 03:01:00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2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시민이 수입 쇠고기를 고르고 있다. 김미옥 기자


《2010년 4월 2일, 회사원 A 씨는 전날 밤 말다툼 끝에 토라진 아내를 와인으로 달래 보려고 백화점에 들렀다. 평소 아내가 마셔 보고 싶다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조든-카베르네 소비뇽’ 2002년산을 골랐다. 이 와인은 한미 FTA가 발효되기 전까지는 750mL 한 병에 11만 원(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기준)이었는데 FTA로 미국산 와인에 대한 관세가 없어지면서 10만 원에 살 수 있게 됐다. 아내가 비스킷과 즐겨 먹던 미국산 ‘브리 치즈’도 6000원에서 4400원으로 값이 떨어져 별 부담 없이 샀다. 이날 A 씨는 아내와 기분 좋게 와인 한 병을 비우고 잃었던 점수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2일 타결된 한미 FTA가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되면 A 씨 같은 일반 소비자들이 적지 않은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 소비자 생활 어떻게 달라지나

○ 소비자 후생 1000억 원 증가할 듯

미국 농산물 수입으로 일부 농가 및 업종이 피해를 보겠지만 전체적인 소비 후생은 늘어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정경제부는 이날 발표한 ‘한미 FTA 타결에 따른 영향 및 기대효과’ 보고서에서 국내 관세 하락에 따른 수입품 가격 하락과 이에 따른 국내 제품 가격 경쟁으로 소비자 후생의 직접적인 증대 효과는 1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최근 한미 FTA 체결 뒤 10년 동안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7.75%(352억 달러), 가격 인하 등에 따른 소비자 후생 수준은 현재보다 6.99%(281억 달러)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소비자 후생 수준은 같은 제품을 보다 싼 가격에 살 수 있고 다양한 제품을 선택하는 폭이 넓어지는 등의 소비자 혜택을 계량화한 것이다.

연구원 측은 “식료품 소비 및 각종 제품 구매 등 온갖 소비량이 평균 6.99%가량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라며 “한미 FTA에 따른 대대적인 개방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국민 대다수인 소비자라는 데 별다른 이견은 없다”고 설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내정자도 “한미 FTA 체결로 가격 인하 등 소비자 잉여 증가를 고려한 후생 수준이 7%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싸지는 장바구니 물가

미국산 제품이 수입되면 일반 소비자들의 한미 FTA 체감(體感) 효과는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민간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후 가정주부 B 씨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면서 일부 제품을 미국산 등 외제로 구입하면 평균 25.3%의 예산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예를 들어 2만 원 하던 호주산 쇠고기 등심 400g을 살 때 값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관련 시장에 가격 경쟁이 붙으면 1만4280원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50%의 관세가 붙던 미 캘리포니아산 선키스트 오렌지도 한 봉지에 7000원 하던 것이 계절관세 비적용 기간에는 유통 및 판매 마진을 감안해도 4660원에 살 수 있다. 또 미국산 카망베르 치즈 한 덩어리도 6000원에서 4410원으로, 미국산 버터도 4000원에서 2100원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 품목에서 제외된 쌀을 비롯해 상추 등 야채 및 체리 복숭아 등 FTA로 가격 변동을 받지 않는 한국산을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B 씨의 예산은 6만2000원에서 4만9490원으로 1만2510원 줄어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와 함께 미국산 사과, 포도 등도 한미 FTA 발효 이후 싼값에 우리 식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 미국산 자동차 값 내려간다

이전보단 떨어졌지만 여전히 비싼 미국산 자동차 값도 현재보다 더 하락할 것으로 보여 국내 자동차 값의 동반 하락까지 유도할 가능성도 높다.

현재 미국산 자동차에 붙는 관세 8%를 폐지하면 운송비 등을 감안해 지금보다 5%대까지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망이다.

이에 따라 현재 4400만 원(부가세 포함)에 팔리는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4000cc)은 4180만 원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최근 서울 시내에서 자주 눈에 띄는 크라이슬러 ‘PT 크루저’(2400cc)는 2990만 원에서 2840만 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일본 자동차 값의 인하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도요타의 렉서스는 지금까지 모두 일본에서 제작되고 있지만 혼다의 중형 세단인 어코드는 미국에서 제작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핑 등 미국산 유명 골프채 및 기타 일반상품도 중장기적으로 지금보다 5%가량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 이에 따라 관련 서비스업의 활황도 예상된다.

또 최근 국내 지상파 및 케이블TV에서 방송되는 미국 유명 드라마의 편성 비율이 높아져 이른바 ‘미드(미국 드라마)’ 확산에 따라 국내 드라마 콘텐츠 시장과의 품질 경쟁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 값이 오르거나 변동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아

이번 협상 타결로 의약 분야에서는 ‘제네릭 의약품’(원의약품과 효능이 동등한 복제 의약품)의 출시가 늦춰질 수밖에 없어 국내 환자들은 당분간 비싼 외국 신약에 의존해 의료비가 현재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보통 제네릭 의약품 가격은 ‘모델’이 되는 미국 신약의 70% 안팎에서 판매돼 왔다.

또 이번 협상 타결로 ‘폴로’, ‘바나나 리퍼블릭’ 등 미국 유명 의류 브랜드의 가격 인하를 점치는 소비자들도 많았으나, 이들 브랜드는 대부분 베트남 등 미국 밖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관세 폐지 및 인하에 따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일각의 관측과는 달리 관세 폐지와 상관없이 고가(高價) 전략을 고집하는 품목은 한동안 현재 가격이 유지되거나 더 오를 수도 있다.

실제로 한미 FTA 민간대책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산 화장품이 관세 폐지로 지금보다 10% 안팎 싸질 것으로 내다봤으나, 일부 화장품 업계는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 화장품 업계가 눈에 띄는 가격 인하 정책을 쓸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학계와 소비자 단체들은 한미 FTA 체결이 오히려 식생활을 중심으로 한 국내 소비시장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모임 등 11개 소비자 단체들로 구성된 한미 FTA 소비자대책위원회 관계자는 “한미 FTA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갑작스러운 시장의 확대로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진행되지 않는 데 따른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한미 FTA로 최대한 소비자가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세부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