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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12년 英탐험가 스콧 남극서 동사

입력 | 2007-03-29 03:00:00


남극점.

로버트 스콧과 4명의 영국 남극 탐험대는 평생의 소원이던 남극점을 밟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막대기 끝에 매달려 펄럭이는 노르웨이 국기를 보는 순간 그들은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 36일 전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이 먼저 남극점에 도달한 것이다.

갖은 난관을 헤쳐 가며 가까스로 남극점에 도착한 스콧 일행은 실망과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다시 귀로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엄청난 눈보라였다. 일행 중 한 명이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 안 가 또 한 명의 대원이 대열에서 이탈했다. 로런스 오츠 대위였다.

발이 동상에 걸려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자 그는 한밤중에 텐트에서 나가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기지로 돌아가는 데 자신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잠시 볼일 좀 보고 오겠다.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오츠 대위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1912년 3월 29일. 사나운 눈보라에 갇힌 로버트 스콧과 나머지 2명의 탐험대원은 끝내 숨을 거뒀다.

죽기 직전 스콧은 유명한 작가인 제임스 벨리 경 앞으로 편지를 썼다. ‘식량은 이제 동이 났고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제발 안심해 주십시오. 이 텐트 안에는 힘찬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아내에게도 편지를 썼다. 편지는 ‘홀로 될 내 아내에게(To my widow)’로 시작됐다고 한다.

스콧과 아문센의 남극점 정복 대결은 영국과 노르웨이 두 나라의 자존심을 건 승부였다.

둘은 엇비슷한 시기에 남극점을 향해 출발했지만 스콧은 준비 부족과 판단 착오로 아문센에게 패했다.

아문센이 물자 수송 수단으로 추위에 강한 개(허스키)를 택한 데 반해 스콧은 추위에 약한 말을 골랐다. 또 아문센은 방한과 보온 기능이 뛰어난 동물 가죽 털옷을 입었지만, 스콧은 습기에 금방 젖는 합성섬유를 착용했다.

후세에 스콧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원들과 함께 최후의 순간까지 명예를 지킨 영국인이라는 찬사와 함께 치밀하지 못한 준비로 대원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리더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