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식 포스코 광양제철소 1열연 공장장은 25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몸으로만 일하는 현장 근로자에게는 발전이 없다”며 생각하는 지식 근로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 제공 포스코
농업고 출신 ‘철강 명장(名匠)’이 세계 최대 열연공장의 책임자가 됐다.
주인공은 최근 포스코 광양제철소 1열연 공장장에 임명된 임채식(55) 씨. 포스코 주력생산 라인인 열연공장 생산라인에서 고졸 출신 근로자가 공장장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광양제철소 1열연 공장은 지난해 생산량이 614만5000t으로 전 세계 350여 곳의 열연공장 가운데 최대 규모다.
열연공정은 쇳물에서 나온 반(半)제품 상태의 슬래브를 1차 가공해 제품화하는 과정으로 여기에서 만든 제품은 자동차용 강판 등 포스코 주력 제품의 원자재로 쓰인다.
임 공장장은 2005년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장인들의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 산업 명장(압연분야)’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명장’과 ‘공장장’이라는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셈이다.
쇠와는 전혀 무관한 농고 출신인 임 공장장은 오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다른 노력을 해 왔다. 그는 1973년 전남 곡성군에 있는 곡성농고를 졸업한 뒤 하위직 공무원 생활과 군복무를 마치고 포항제철(현 포스코) 직업훈련원을 통해 1977년 포항제철에 입사했다.
임 공장장은 고졸 출신으로 공장장까지 오른 자신의 비결을 ‘꼼꼼한 기록’이라고 털어놨다.
“입사 후 매일 생산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했어요. 그날그날의 생산 현황과 기계 고장, 해결 방법 등을 기록으로 남겼지요. 30년 동안 모은 노트가 100권이 넘어요.”
그의 현장 일기는 위기의 순간마다 빛을 발했다.
기계가 멈추거나 생산라인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일기를 뒤적이며 매번 똑 떨어진 해결책을 찾아낸 것.
2002년 작업현장을 떠나 대졸 사원들이 가는 관리직으로 승진한 후에도 그의 샘솟는 아이디어는 멈출 줄 몰랐다.
풍부한 현장경험을 살려 품질과 설비를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쏟아내 현장 작업률 세계 신기록(92.4%)을 세웠는가 하면 포스코 열연공장의 생산, 품질, 원가부문에서 33개의 작업률 신기록을 올렸다.
“작업 효율성 개선 등 각종 아이디어를 얻는 데 10, 20년 전에 쓴 일기가 지금도 큰 도움이 됩니다. 100권의 대학노트가 나에게는 최고의 데이터베이스죠.”
임 공장장은 또 “기록 못지않게 늘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트의 구석구석에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문제의식과 자신의 생각을 함께 적어 두면서 틈날 때마다 혼자 고민을 해 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현장 노동자는 몸으로만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현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경험과 기록, 생각이 한데 어우러지면 화이트칼라 못지않은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공장장은 “회사가 잘되기 위해 생산, 품질, 원가 면에서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식 근로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마지막 포부”라고 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