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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피끓는 노인들 ‘거침없이 하이킥’

입력 | 2007-02-10 02:59:00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이순재 씨와 ‘밍크문희’ 나문희 씨. 이들은 노인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욕망을 가지고 있고 속으로는 애들처럼 유치한 면도 있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MBC

지난달 개봉한 영화 ‘마파도2’의 할머니들. 남자를 밝히고 예쁜 척하는 이들에게서 고리타분한 할머니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 제공 코리아엔터테인먼트

웹툰 ‘와탕카’ 시리즈의 바람할매. 고려장으로 깊은 산속에 버려진 할머니가 ‘바람의 파이터’처럼 최강의 무도가로 거듭난, 다소 엉뚱한 캐릭터다. 사진 제공 우주인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MBC 본사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촬영장. 출연자인 이순재와 나문희가 대사를 주고받으며 한창 리허설 중이다. 두 사람은 ‘야동순재’ ‘밍크문희’라 불리며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년배우다.

“일흔 둘에 ‘야동순재’라고 불릴 줄은 몰랐습니다. 노인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인간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고, 속으로는 애들처럼 유치한 면도 있죠.”

‘야동순재’는 한의사 이순재가 손자들이 보던 ‘야동(야한 동영상)’을 우연히 접하고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벌어진 에피소드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야동’을 몰래 보다가 들키자 모른 척 발뺌하는 연기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나문희도 가족 몰래 홈쇼핑으로 밍크코트를 주문해 입은 뒤 “내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라며 속이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 ‘밍크문희’란 별명이 생겼다.

“나이 먹어도 여자들은 다 똑같아요. 모임에 나갈 때 친구들한테 비싸고 좋은 옷 입어서 자랑하고 싶고 그렇죠. 비록 연기이긴 하지만, 저도 가끔 ‘밍크문희’에게 동질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김병욱 PD는 “우리 부모님도 가끔 ‘야동순재’나 ‘밍크문희’의 유치함에 즐거워하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노인들도 감추고 숨길 뿐, 젊은이들처럼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임을 보여 준다. 손자들처럼 성적인 호기심도 있고 능력 있는 며느리처럼 허영심도 간직하고 있다.

○ 야동순재에서 마파도 할머니까지…새로운 노인이 몰려온다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표출된 노인의 이미지는 엄숙한 집안 어른이었다. 노인은 극의 주변에 머물며 밥상머리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일종의 무대장치나 다름없었다.

‘야동순재’와 ‘밍크문희’는 이런 이미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들은 뻣뻣한 권위를 내던져 버리고 살아 있는 캐릭터로 거듭났다. 단순히 망가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다양한 욕망을 드러내는 허점 많은 ‘사람’으로 살아 숨쉰다.

지난달 개봉해 인기몰이에 나선 영화 ‘마파도2’의 할머니들도 마찬가지다. 남자를 밝히고 예쁜 척하는 마산댁에게서 ‘주인공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상’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할머니들도 마파도 할머니들 못지않은 개성과 입심, 사랑에 대한 욕구를 뽐낸다.

최근 인기리에 막을 내린 웹툰 ‘와탕카’ 시리즈의 바람할매는 ‘야동순재’나 마파도 할머니들보다 훨씬 과격하다.

바람할매는 고려장으로 깊은 산속에 버려진 할머니가 ‘바람의 파이터’처럼 최강의 무도가로 거듭난 캐릭터. 시리즈 내내 카메오처럼 등장해 엉뚱한 웃음을 선사한다. 웬만한 젊은이는 발차기 한 방에 날려버리고 날생선을 우적우적 뜯어먹는다.

○ 노인도 욕망과 본능을 가진 주체

얼핏 이들은 단지 주책없는 노인으로 희화화한 것처럼 보인다. 또 이들의 개성과 욕망은 단지 젊은이의 패션과 문화, 욕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지적도 있다. 노인의 탈을 쓴 10대 문화상품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대중문화에 적극적으로 표현된 노인의 개성과 욕망은 노인에 대한 사회의 달라진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더 많다.

고령화시대의 도래가 첫째 이유다. 우리 사회 노인들이 ‘경제 정년’에서는 퇴직하고 있지만 끝나지 않은 ‘사회 정년’을 누릴 시간이 과거에 비해 길어졌다.

이제 노년은 단지 죽음까지 남은 시간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노인도 젊은이들처럼 욕망을 가졌었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회가 깨닫고 있는 것이다.

김병욱 PD는 “‘야동순재’와 ‘밍크문희’ 캐릭터는 가족관계에서의 위치와 나이, 사회적 신분 등의 제약 때문에 본능과 욕망을 억눌렀던 우리 시대 노인들의 자화상과 그 틀을 깨는 변화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노인은 단지 아들딸에게 의지하는 힘없는 주변인이 아니다. 바람할매가 할머니에서 바람할매로 거듭나며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나의 아들은 나를 버렸고 나의 힘은 약했다. 그래서….”

문화평론가 김종휘 씨는 “대중문화가 청소년에 이어 노인이라는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했다”고 지적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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