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채만 한 파도 지난해 7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에위니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해안에 집채만 한 파도가 덮치고 있다. 한반도를 덮치는 태풍의 건수는 큰 변동이 없지만 태풍의 강도와 피해액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5020’을 ‘올해의 숫자’로 선정했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시작한 2003년부터 약 3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에 사용한 비용인 5020억 달러(약 451조8000억 원)를 나타낸다.
세계 최대의 재보험회사인 ‘스위스 리’ 등에 따르면 같은 기간 전 세계에서 일어난 자연재해 피해액은 55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 중인 테러와의 전쟁 비용보다 가뭄,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의 피해액이 더 큰 것이다.
한국의 자연재해 피해액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통화가치의 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비교이기는 하지만 2000년부터 5년간의 자연재해 피해액은 2조9812억 원으로 1985년부터 5년간 피해액인 6950억 원의 4.29배에 달했다.
○ 기온상승에 태풍 강력해져
소방방재청과 기상청 등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태풍이 한국의 자연재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건수로는 8.6%. 그러나 피해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64.5%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한국은 세계적 기온 상승의 피해를 크게 볼 국가로 꼽힌다.
한국환경정책평가원 한화진 선임연구위원은 “기온 상승은 태풍과 호우를 잦고 강력하게 만드는 요소”라며 “두 가지 재해가 한국 자연재해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한국이 지구 온난화의 심각한 피해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1900년 이후 한국에 상륙한 태풍 가운데 가장 강했거나 피해액이 최고였던 태풍은 모두 최근 5년 새 발생했다.
2003년 발생한 태풍 ‘매미’는 한반도에 상륙해서도 중심기압이 최고 950헥토파스칼(hPa)을 나타내 1959년 태풍 ‘사라’의 952hPa 기록을 경신했다. hPa은 기압의 단위로 낮을수록 태풍의 위력이 세다.
2002년 8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루사’는 사상 최고의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루사는 중심기압이 970hPa 수준으로 매미나 사라보다 약했지만 피해액은 5조1379억 원에 달했다.
부산대 하경자(기후역학) 교수는 “도시화, 산업화에 따라 비슷한 강도의 태풍이나 호우에도 피해액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일 재해의 피해액이 커지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 2005년 미국에 닥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대표적이다.
사상 최악의 허리케인 피해로 기록된 카트리나는 1600억 달러(약 144조 원)의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이는 2001년 9·11테러의 피해액 200억 달러의 8배에 이른다.
○ 5년 동안 국민 1인당 55만 원 부담
2001년부터 5년간 한국은 자연재해 복구에 27조9802억 원을 들였다. 이 가운데 26조5680억 원을 정부가 부담했다. 이 기간 재해를 직접 당하지 않았더라도 국민 1인당 세금으로 약 55만 원을 부담한 셈이다.
국민들은 재해 복구비 외에도 앞으로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의 배출 비용도 치러야 한다.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따라 세계 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할당받았다. 할당받은 이상으로 배출하려면 이웃나라로부터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한화진 연구위원은 “유럽연합(EU) 국가 간 배출권 거래를 기준으로 보면 1t의 이산화탄소 배출권 가격은 15∼18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2004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7t. 이를 배출권 가격으로 보면 14만4450∼17만3340원이다.
4인 가족이라면 많게는 가구당 69만3360원어치의 배출권 구입 부담액을 국가에 안기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치를 초과하지 않으면 이런 비용은 치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4년 5억9060만 t으로 1990년의 2.3배에 달해 빠른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 재해보험 확대 시급
자연재해 피해액이 급증하면서 재해보험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민간의 자연재해 피해에 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해 왔다. 지원금은 피해액의 35% 선. 이 때문에 재해 당사자는 국가에 지원금이 적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국가는 예산 부족에 시달렸다.
대부분 선진국의 경우 정부는 민간의 재산 피해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생계비만 지원할 뿐이며 재산 피해는 보험으로 해결한다.
한국도 지난해 풍수해보험법을 발효시켜 전국 9개 시도에서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주택, 축사, 온실 등 보험 대상에 따라 보험료의 49∼65%를 지자체가 지원한다.
풍수해보험의 보험금 한도는 주택이 완파됐을 때 2700만 원이다. 반면 미국은 25만 달러이며 프랑스는 한도가 없다.
소방방재청은 풍수해보험 시범 사업을 확대하고 가입자 증가 추세에 따라 보험금 한도도 늘릴 계획이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