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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사관계 ‘역주행’]정치 조직화한 노조

입력 | 2007-01-15 02:54:00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한국 경제에 다시 한번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50%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는 노조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원칙을 세우겠다’는 사측의 주장이 접점을 찾기 어려워 파업이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울산=연합뉴스


《1987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출범한 후 20년 동안 존재했거나 지금까지 활동 중인 파벌은 알려진 것만 28개다. 이 가운데 온건 실리 노선을 추구하는 파벌은 ‘전진하는 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전민투), ‘노동연대 투쟁위원회’(노연투), ‘신노동연합회’(신노련) 정도. 나머지는 노동해방을 주장하는 강경파로 분류된다. 이들 강경파는 선거 과정에서 합종연횡을 통해 항상 집행부를 장악해 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아예 ‘강경 투쟁=위원장 선거 승리’의 공식이 굳어졌다. 전임 대의원 L 씨는 “노사 갈등이 첨예해야 위원장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각 파벌에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 왜 강경파가 노조를 항상 지배할까

12일 현대차 울산공장 내 문화회관에서 임시대의원회가 열렸다.

박유기 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는 대의원들에게 만장일치 파업 결의를 요청했다. 집행부가 요청한 ‘만장일치’는 박수소리만 나면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고 공표하는 방식.

온건파 계열의 일부 대의원이 찬반투표를 제의하자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찬반투표를 주장한 10여 명은 결국 회의 도중 회의장을 떠났다. 회의장을 떠났던 한 대의원은 “이제부터 우리는 대의원으로 생명이 끝났다. 지도부는 우리를 어용으로 낙인찍었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 집행부에서 온건파는 곧 어용으로 찍힌다. 강경 파벌이 노조를 지배하면서 실리와 온건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강경파 지배구조는 파벌 구조와 위원장 선거를 통해 굳어져 왔다.

온건노선인 노연투는 1999년 7대 위원장 선거 때부터 2005년 12대 위원장 선거까지 6회 연속 위원장 선거에 도전했으나 전패했다.

매번 결선(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1, 2위가 결선 투표를 치름)까지 갔지만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노연투 소속이었던 전 대의원 A 씨는 “결선 투표에서는 나머지 강경 파벌들이 표를 결집하기 때문에 실용적인 노선은 계속 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개 파벌의 인원은 100∼300명. 300명인 온건 파벌이 예선 투표에서 1위를 해도 100∼200명인 강경 파벌이 연합하면 온건파가 항상 패배하는 구도인 셈이다.

온건파로 꼽히는 전민투와 노연투는 최근 조직을 해산했다. 이들은 온건파의 결집으로 2월 위원장 선거 당선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성과급을 둘러싼 폭력 사태와 파업은 강경파의 입지를 다시 강화시키고 있다.

○ 묻혀버리는 일반 조합원의 목소리

지난해 12월 6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을 이유로 현대차 노조가 정치성 파업을 벌이던 무렵. 울산 승용 1공장 주변에서는 노조 대의원이 출석을 불렀다. 일반 조합원 70여 명의 이름을 일일이 불렀고 빠진 사람은 없었다.

공장 내 200여 개 선거구(대의원 선거 등을 위해 작업장 단위로 나뉜 구역)에서 똑같은 출석 확인이 이뤄졌다. 출석 확인이 끝나고 선거구별로 집회장으로 향했다.

10일 상경투쟁 때도 집행부는 ‘대의원 소위원 필참, 대의원은 선거구당 조합원 10명 동원 의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때도 서울로 향하기 전 선거구별로 출석 확인이 이뤄졌다.

노조원 L 씨는 “대의원이 출석을 확인하는 분위기에서 일반 노조원이 파업에 빠지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원 동원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불참한 대의원 또는 소위원은 노조 내부에서 한직으로 돌거나 아예 퇴출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현직 대의원 B 씨는 “평범한 근로자의 60%는 온건 실리를 추구한다”며 “그러나 파벌 구조와 2000여 명에 이르는 노조활동가의 단속 탓에 온건한 목소리는 집행부 의사 결정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계속 양성되는 노조활동가

협력업체 등을 거쳐 1990년 현대차에 입사한 P 씨. 그는 1991년 소위원을 맡았고 이듬해 대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7차례 노조 대의원을 맡으며 중견 노조 간부로 활동했다.

그는 입사 전 노동운동 경력을 배경으로 빠르게 현대차 노조의 간부가 된 경우다. 입사 전 노동운동 경력이 없는 신입사원이라면 소위원 활동과 노조가 운영하는 사내 노동대학원 등을 거치며 노동이론가로 변신한다.

현대차 노조는 위원장 등 핵심 간부가 같은 파벌의 대의원들을 관리하고, 대의원 1명당 최고 10명까지 소위원을 두는 구조다. 예비활동가인 소위원은 1960여 명.

현대차 노조 부위원장을 지낸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은 “10여 개 조직(파벌) 때문에 노조가 유지되며 조합 내 노조활동가로 불릴 수 있는 조직원은 2000∼30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조직원 주변에서 불만이 있더라도 일단 집행부에 따르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강성 집행부는 항상 4000∼5000명의 지지를 얻게 된다.

자동차공업협회 김승익 이사는 “현대차에서 양성된 운동가들은 생산 현장 대신에 상급단체나 정치권으로 많이 진출해 왔다”며 “이 과정에서 현대차 노조는 노동계 중앙조직과 정치권의 축소판이 됐다”고 말했다.

울산=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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