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 가운데 말하지 않는 지도자가 어디 있나. 그 속에서 정치가 이뤄지는데 나더러 말을 줄이라고 한다. 합당한 요구가 아니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부득이 나도 온몸으로 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에서 이같이 말했다.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손으로 연단을 내리치는 등 격정적인 몸짓으로 막말 발언을 한 데 대한 비판 여론을 겨냥한 듯했다. 청와대는 2일 ‘청와대브리핑’에 오찬 당시 비공개 발언 전문을 공개했다.
▽“대화와 타협은 참여정부의 원리”=노 대통령은 이날 “대화와 타협은 참여정부의 원리”라며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너 어느 편이냐’ 하는 식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좀 어렵다. 그래서 소통이 어렵다. 대화가 안 되더라도 말귀는 서로 통해야 되는데 말귀가 서로 안 통하는 것이 요즘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비판여론은 듣지 않고 ‘할 말을 다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행태야말로 소통의 진정한 의미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인사가 만사’라는데 ‘코드’ ‘보은’ ‘회전문’ 인사 등 파행을 거듭하면서 원칙과 공정, 투명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다른 여권 인사도 “당과는 한마디 상의 없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대화와 타협’이 참여정부의 원리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갖고 있는 수단은 인사권과 말”=노 대통령은 “방송 뉴스를 봤더니 ‘대통령이 말이 많다’고 한다”고 운을 뗀 뒤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정치를 한다”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말을 잘해서 성공했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말의 달인’ ‘말의 천재’ 아니냐.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 못하는 지도자는 절대로 지도자가 될 수 없다”며 “내가 선거할 때 말 못하게 했으면 대통령이 어떻게 됐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그날 입을 딱 다물어 버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대통령이 갖고 있는 수단 가운데 중요한 것이 인사권과 말”이라며 “클린턴 전 대통령도 엄청나게 많은 말을 했고, 블레어 총리도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국회의사당에 나와서 야당 지도자와 치고받고, 반박하고 비꼬는 말도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블레어 총리와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적절한 비유와 논리로 국민과 상대방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거친 발언’을 이들의 발언과 동렬에 놓는 것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군대에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별 달고 거들먹거리느냐’는 식으로 군을 비하했는데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블레어 총리가 그런 말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언어문화가 다른 구미의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의 말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대통령은 후보시절과 달리 자신의 말이 미칠 파장을 생각해야 한다. 임기 말에는 더욱 말을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3일 열리는 국무회의서 영양가있는 얘기 있을것”
한편 청와대 대변인을 겸임하게 된 윤승용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2일 “대통령은 앞으로 할 말은 하겠지만 할 일도 할 것”이라며 “기자들이 엄청 바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일(3일) 국무회의에서도 ‘영양가 있는’ 얘기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