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아·파·트…지금은 황금알 낳는 오리지만 한때 천덕꾸러기

입력 | 2006-11-15 03:00:00

경기 성남시 분당 아이파크. 사진 제공 현대산업개발

1962년 건설된 서울 마포아파트.

경기 성남시 분당 신도시.


광복 이후 국내 최초의 아파트는 1958년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세워진 종암아파트. 4층짜리 건물 4개 동(棟)에 17평형 아파트가 모두 152채 지어졌다.

당시 세간의 화제는 ‘김장독은 도대체 어디에 묻어야 하나’였다. 아파트는 신기한 구경거리였지 주거공간으로는 관심 밖이었다.

아파트는 온 국민의 관심사인 지금과 달리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이야 아파트가 전국적으로 매년 40만 채 안팎으로 공급되지만 1960년대 전후만 해도 600여 채에 불과했다.

●60년대-마실 물도 귀한데 수세식 화장실이 웬 말

현대산업개발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최근 펴낸 ‘현대산업개발 30년사(史)’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는 1962년 지어진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아파트다. 당초 엘리베이터, 중앙난방시스템,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10층 높이의 고층으로 지으려 했다.

하지만 ‘전기 사정도 안 좋은데 무슨 엘리베이터,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중앙난방이 웬 말이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서울시 수도국은 한술 더 떠 “마실 물도 귀한데 수세식 화장실은 곤란하다”고 나섰다. 결국 이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으로 지어졌고 난방은 가구별 연탄보일러로 하게 됐다. 그런데도 고층에 대한 두려움과 연탄가스 불안감 등으로 입주율은 10%에 그쳤다.

화장실은 우여곡절 끝에 수세식으로 만들었지만 시공 수준이 낮아 경비실 직원은 막힌 양변기를 뚫느라 정신없었다. 마포아파트가 등장한 후에 건립된 아파트들도 대부분 10∼20평형대의 중소형으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70년대-한강 주변 아파트 본격 개발…투기의 시발점

이런 아파트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은 한강 주변 개발이었다.

1970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지은 한강맨션이 시발점이다. 27, 32, 37, 51, 55평형 등 중산층을 위한 중대형 평형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특히 이 아파트는 분양하기 전에 모델하우스를 지어 입주자들을 모으는, 당시로선 기발한 마케팅을 선보였다. 일부에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 국가정책에 반한다’는 따가운 눈총을 보냈지만 한강맨션은 인기리에 분양됐다.

이후 한강변을 따라 반포, 잠실, 둔촌지구 등에서 값싼 강남권 땅들이 대규모 단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특히 반포아파트 단지는 중산층 아파트 건설의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급증한 아파트 건설은 주택난 해소에 도움을 주기보다 투기성 자본 형성을 불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당시 4000만∼5000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투기의 대명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80년대 이후-5개 신도시 등 건설…출산율 따라 구조 다양화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풍토가 아파트 분양에 투영됐다.

1977년 서울 강서구 화곡시범단지는 아파트 입주자를 모집할 때 불임 시술자에게 당첨 우대 혜택을 주는 제도가 처음으로 적용됐다. 최근 저(低)출산 대책에 따라 자녀가 많을수록 청약할 때 유리하게 해 주는 ‘청약 가점제’와는 정반대인 셈.

198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 경기 과천시, 5개 신도시 등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공급량이 많아지자 아파트는 고객 위주로 바뀌었다. 거주자의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평면 설계가 쏟아졌다. 같은 크기의 아파트에서도 방 개수가 달라졌다. 대형 평형에서는 부부 전용 욕실이 일반화됐다.

1990년대에는 가족 구성원의 분화로 개별 공간이 절실해졌다. 32평형에까지 부부 욕실이 설치되고 안방과 연결된 별도의 침실을 두는 아파트도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출산율이 크게 떨어져 가족 구성원이 줄어든 2000년대에는 40∼50평형대 아파트인데도 방은 3개 정도만 만들고 거실을 넓히는 추세로 변했다.

부모에게 ‘얹혀사는’ 성인 자녀인 ‘캥거루족’들을 위해 ‘1+1 형태’의 아파트도 나왔다. 10평형대 두 채를 세트로 분양하되 두 아파트를 구분하는 벽을 ‘가변형’으로 만들어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