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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얕보면 다쳐!… ‘전략의 귀재들 곤충’

입력 | 2006-09-30 03:00:00


◇전략의 귀재들 곤충/토머스 아이스너 지음·김소정 옮김/568쪽·4만8000원·삼인

파리 크기만 한 폭격수 딱정벌레를 길가에서 발견해도 절대로 손으로 잡지 마시라. 다친다. 누군가 건드리면 폭격수 딱정벌레는 섭씨 100도가 넘는 액체 폭탄을 순식간에 발사한다. 뜨거운 독극물을 배 속에 품고도 이 벌레의 배가 터지지 않는 까닭은 뭘까. 놀라운 신체 구조 덕분이다. 저자가 청산가리를 뿜어내는 노래기를 해부한 결과 배 속에 두 개의 주머니가 있고 양쪽의 내용물이 서로 섞여야만 청산가리가 생산되는 방식으로 독극물을 품고 있었다. 곤충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살아남기 위해 적응한 진화의 신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곤충에 비하면 하늘의 별도 지극히 간단한 구조체일 뿐”이라는 책 속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작은 개체 안에 이렇게 큰 우주가 담겨 있다니!

저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씨는 미국 코넬대 석좌교수이자 화학생태학 분야의 개척자인 저자를 “절지동물 분야의 점묘화가”라고 불렀다. 그 말마따나 저자는 최신 현미경과 화학분석장치 등으로 점묘화를 그리듯 곤충의 행동방식, 분자 단위의 진화 모습을 일일이 확인하고 종합해 구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보여 준다.

익숙지 않은 곤충 학명, 화학물질 용어가 줄줄이 나오지만 위축될 필요 없다. 사진과 그림이 많아 어려운 실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초반의 낯섦을 넘어서기만 하면 훨씬 큰 ‘발견의 즐거움’을 선물하는 책이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곤충이 개발하는 ‘전략’은 화학물질만이 아니다. 이오나방, 스파이스부시 호랑나비 애벌레는 적을 방어하는 데 가짜 눈을 이용한다. 나방을 쪼아 먹으러 다가온 새들은 포식자의 눈을 닮은 나방 뒷날개의 가짜 눈과 맞닥뜨리면 혼비백산해 달아나 버린다. 스파이스부시 호랑나비 애벌레의 가짜 눈은 동공이 삼각형 모양이어서 한꺼번에 모든 방향을 다 보는 것처럼 오묘하게 생겼다.

어디 그뿐인가. 플로리다거북딱정벌레는 개미가 아무리 공격해도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벌레의 무기는 바닥에 찰싹 달라붙을 수 있도록 분비되는 기름과 6만개나 되는 다리 끝의 가시털이다. 저자가 딱정벌레의 등에 왁스로 실을 붙여 추를 매달아 봤더니 몸무게 13.5mg의 딱정벌레가 2g짜리 추에도 끄떡없었다. 자기 몸무게보다 148배나 무거운 무게, 사람으로 치면 몸무게 70kg인 사람이 13t이 넘는 무게를 감당하는 셈이다.

곤충의 세계 못지않게 저자도 매력적이다. 저자는 액체 폭탄을 발사하는 폭격수 딱정벌레의 포식자들이 받는 느낌이 궁금해 벌레를 입에 넣어 보기까지 했다.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을 먹어치우는 애벌레를 ‘적발’하기 위해 저자가 밤에 ‘잠복근무’했던 상황을 묘사한 대목은 코믹한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자신이 지휘하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모토로 ‘우리는 우리가 내는 소리처럼 나쁘지 않다’를 내걸었다던, 저자의 유쾌한 ‘딴소리’를 듣는 것도 즐겁다.

유머러스한 문체를 따라 신기한 곤충 세계 탐험을 하다 보면 도리 없이 곤충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르기오페 아우란티아 거미는 사마귀의 독니에 물리면 외과용 가위로 싹둑 자르듯 자기 다리를 잘라버린다. 사마귀가 움켜잡아서가 아니라 독을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가 통증유발제로 알려진 꿀벌, 말벌의 독을 거미의 다리에 주입하는 실험을 했을 때에도 거미는 미련 없이 다리를 잘랐다. 그렇게 하지 못한 거미는 죽었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물질은 곤충도 아프게 한다. 저자는 “스스로 제 다리를 잘라버리는 거미의 생리적 감수성은 인간의 감수성과 다르겠지만, 전혀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곤충이라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원제 ‘For Love of Insects’(2003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