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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3년 케네디, 소련에 달 공동탐사 제안

입력 | 2006-09-20 03:00:00


“급우 여러분, 반장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묻지 마시고, 여러분이 학급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장 선거에 나가면서 어린이 위인전집에서 읽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을 ‘표절’한 적이 있다. 그저 그 말이 멋져 보여서.

결과는 낙선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형의 핀잔.

“대통령 취임사를 후보 소견 발표 때 활용했으니 될 리가 있냐. 당선 소감에나 쓸 말인데….”

케네디의 취임사(1961년 1월) 중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라는 그 구절(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은 당시 미 우주과학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케네디가 강조한 뉴프런티어 정신이 우주 개척 의지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 크랜츠 전 미 항공우주국(NASA) 관제본부장은 저서에서 회고했다.

1962년 5월 케네디는 의회에 보낸 특별메시지에서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로 보내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수 있게 하겠다”는 도전적 선언을 했다. 그가 설명한 우주 개발 노력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았다.

“소련이 우주 개발 기술에서 우리(미국)보다 앞서 있지만 우리는 나름의 새로운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 우리가 언젠가 1등이 될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꼴찌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미국과 소련 사이 ‘달 탐사 냉전’이 불붙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넘긴 뒤 일시적으로 조성된 양국 간 해빙 분위기는 우주 경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3년 9월 20일 케네디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무기보다 더 강한 무기는 평화적 협력”이라며 소련에 달 탐사 공동 추진을 제안했다.

“우주에는 새로운 협력의 공간이 있습니다. 주권의 문제도 없습니다. 왜 인간의 최초 달 탐사가 국가적 경쟁의 문제가 돼야 합니까.”

두 달 뒤 케네디가 암살되면서 이 제안은 흐지부지됐다.

1969년 7월 최초로 달을 밟은 미국인들은 우주 경쟁 과정에서 사망한 미-소의 우주비행사를 기리는 견장과 ‘모든 인류의 평화를 위해 여기 왔다’는 명패를 달에 남기고 돌아왔다.

결국 케네디의 뜻이 모두 실현된 셈이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