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여권 실세 연루설 등 각종 의혹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사행성 게임 확산에 따른 피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최소한 정책 실패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책임을 묻자는 것.
김한길 원내대표는 23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도박성 게임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가게 만든 정책 실패에 대해 정부는 공식적으로 정중하게 대국민 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서민 피해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책임도 무겁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특히 "30조원 규모의 사행성 상품권이 판칠 때까지 민정 등 여러 경로의 경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않은 문제의 심각성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인책론을 제기했다.
그는 또 "정치권이나 권력실세 개입설에 대해서는 반드시 철저히 진상을 파헤쳐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의혹 해소와는 별도로 정부는 정책 실패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여당이 몇 달 전부터 사행성 게임과 불법 PC방 문제를 고민하고 특단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문제를 제때 차단하는 데는 지각했다"면서 "여당도 책임을 느낀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이 기회에 경마와 경륜, 경정, 복권, 카지노 등 사행성 산업 전반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근태 의장도 "이것은 명백한 정책실패"라고 규정한 뒤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생각을 따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과 '발본색원(拔本塞源)' 등의 단어를 써가면서 철저한 진상규명 의지를 강조했다.
김 의장은 "이 문제는 국민에게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줬다"며 "상처는 덮을수록 커지고 감출수록 썩는데, 국민의 눈높이에서 엄정하고 신속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며, 모든 걸 밝히겠다는 굳건한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이어 "열린우리당은 이번 문제에 대해 성역없는 수사, 즉각적이고 신속한 수사, 감사원 검찰 국회를 총망라한 수사 등 3원칙을 갖고 있다"며 "한나라당도 당리당략에 의존해 무책임하게 의혹을 퍼뜨리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의 비대위는 이날 '사행성산업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행성 산업에 대한 실태조사 관리시스템을 점검하고 정책위와 함께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민병두 홍보기획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성인오락실 때문에 서민 피해가 늘고 있는데 장기간 방치된 것은 결과적으로 위기관리 시스템의 문제"라며 "민정을 살피고 실태를 조사하는 관계기관과 대책을 마련하는 정부기관들의 위기관리 시스템도 점검돼야 한다"며 관계부처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초 검찰수사와 감사원 감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던 여당 지도부가 정부의 사과 필요성까지 언급하고 나선 것은 이번 사태의 책임소재를 확실하게 가리지 않을 경우 당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이번 사태가 노무현 대통령의 친척과 측근들의 연루 의혹으로 시작됐지만 최근엔 열린우리당 의원들까지 관련됐다는 의혹에 이어 상품권 업자들의 로비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점도 지도부가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한 중진의원은 "노 대통령이 조카가 연루되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번 사태는 대통령 측근 연루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에게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며 "대통령이 여론을 모르는데 수서비리보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22일 김 의장이 주재한 비대위 만찬회동에서도 한 비대위원은 "이 정도의 정책실패면 비리가 없더라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노 대통령이나 한명숙 총리가 대국민사과를 하고, 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와 특검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한편 당 일각에서는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이 상품권발행업체 임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것과 관련, 후원금을 반환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