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하반기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경제정책은?”
재정경제부는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 ‘여론조사’ 메뉴를 통해 이 같은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①양극화 완화 등 사회통합 ②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대외개방 추진 ③조세와 국민연금제도 개선을 포함해 모두 8개 항목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 설문조사에는 20일 오후 현재 147명이 참여했다. 재경부는 메뉴 안내문에 ‘국민의 소중한 의견이 경제정책 반영에 큰 밑거름이 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설문자료에는 성이나 나이, 직업 등 응답자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묻는 문항이 없다. 한 사람이 여러 차례 조사에 참여해도 막을 길이 없다.
이 때문에 일부 누리꾼의 견해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여론으로 둔갑해 정책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홍성걸(행정학) 국민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02년부터 3년간 중앙 정부기관의 40%가 정책을 수립하면서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를 활용했고, 인터넷 여론조사를 통해 입안되고 수행된 정책 수가 312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묻지 마’ 설문조사로 여론 반영=현재 50개가 넘는 정부 기관은 ‘전자설문’ ‘여론조사’ ‘온라인 설문조사’ ‘전자투표’ 등의 메뉴를 홈페이지에 개설하고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대부분 정책의 우선순위나 구체적인 정책 시행을 앞두고 찬반 의견을 묻는 조사들이다. 통계청은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5월 30일까지 투표 참여 의향을 묻는 조사를 실시했다. 1086명이 응답한 이 조사에서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726명(66.9%)이었으나 실제 투표율은 51.3%로 나타났다. 조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정책을 발표한 뒤 여론을 묻는 ‘뒷북’ 조사도 있다. 법무부는 2월 20일 성인 성폭행 사범에게 ‘야간 외출제한 명령제’를 확대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이틀 후인 22일 새로운 제도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시작했다. 여론조사가 끝나기 전인 3월 1일에는 실제로 성폭행 사범 3명에게 외출제한 명령을 내렸다. ▽대표성 없는 누리꾼 의견이 국민 여론?=인터넷 설문조사는 전체 국민의 인구학적 특성을 대표하도록 과학적인 표본 추출 방식에 따라 응답자를 선정할 수 없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설문에 참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 사람이 수차례 설문에 응할 수 있어 의도적인 여론 왜곡 위험성이 높다.
또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는 교육과 소득수준이 낮고, 주부와 나이가 많은 중장년층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인구 사회학적 특성에 따라 인터넷 이용률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정보 격차 현황 자료에 따르면 남성(78.5%)과 여성(67.2%)의 인터넷 이용률 차이는 11.3%포인트이며 대졸 이상(94.5%)과 중졸 이하(22.6%)의 격차는 71.9%포인트로 나타났다. 이 밖에 나이, 장애 여부, 소득 수준과 거주 지역에 따라서도 정보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통신부의 최근 홈페이지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서도 20, 30대가 80.6%를 차지했고, 남성의 비율이 65.8%로 절반이 넘었다. 행정자치부의 홈페이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는 공무원 응답자가 46.3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성겸(언론정보학) 충남대 교수팀의 연구에서는 학력이 높고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띤 사람들이 인터넷 조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홍 교수는 “전체 국민의 의견을 고루 수렴할 수 없는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