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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김근태 의장의 誤診

입력 | 2006-06-19 21:45:00


열린우리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근태 의장이 그제 인터뷰에서 “고통스럽지만 제 역할을 안 하면 국민이 고통에 직면한다”고 말했다. 민생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래 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의 경제관(觀)이 역시 마음에 걸린다.

그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경제 실정(失政)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강요된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인해 저투자, 저성장, 저고용의 악순환이 발생하고 양극화가 심화됐다.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선험적(先驗的)으로 받아들임에 따라 정책적 오류와 실패가 상당히 있었다.”

좌파(左派)들은 시장경제를 자본 지상(至上)주의, 기업 지상주의로 딱지 붙이기 위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쓴다. 시장경제는 창의와 경쟁을 중시하고 국가(정부) 역할보다 시장(기업) 기능을, 규제보다 자율을 강조한다. 비효율적 공공 지출의 절제,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 민간 부문의 활력과 효율을 추구한다. 시장경제에 충실한 정책이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을 촉진해 분배도 개선한다. 상대적 빈곤까지 해결하지는 못해도 절대적 빈곤은 줄인다. 이는 선험적 관념이 아닌 세계적 경험이다.

시장경제를 꽃피운 나라는 번영하고 있다. 미국 아일랜드 영국이 그렇다. 김 의장이 ‘경제와 복지의 선(善)순환 모델’로 꼽은 스웨덴도 이미 1990년대에 시장경제로의 개혁에 성공했다. 시장경제를 안착시킨 칠레는 잘나가고 ‘얼치기’에 그친 멕시코는 혼란을 겪고 있다.

올해 4월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노선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했다. 분배와 평등을 앞세운 경제정책을 좌파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개방화를 신자유주의로 지칭한 것 같다. 하지만 정책의 큰 흐름은 ‘작은 정부, 감세(減稅), 시장 역할 확대,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에 역행하는 반(反)시장주의였다. 그 결과 정부의 비대화와 재정 운용의 비효율 증대, 기업 투자 위축과 성장 동력 약화, 일자리 부족, 빈곤층 확대 등이 초래됐다.

그런데도 김 의장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탓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건 없건 오진(誤診)이다. 노 정부 아래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음으로써 상중하 어느 계층이나 경제적 파이가 커지지 않았다. 김 의장도 노 대통령처럼 ‘양극화’를 말하지만 진실은 양극화가 아니라 저성장에 따른 빈곤화다.

정권이 원하건 원치 않건 세계화와 정보화는 지구촌의 대세다. 글로벌 경제 속에서 국내 시장을 규제와 세금으로 짓누르고, 과격 노조와 시민단체까지 기업을 흔들면 돈과 인재가 당연히 ‘조건 좋은 해외’로 빠져나간다. 아무리 힘센 정부도 세계시장과 전쟁을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김 의장을 잘 알고 지지한다는 운동권 출신 386이 최근 몇 언론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양극화된 3만 달러 세상보다 고르게 사는 1만 달러 세상을 원한다.”

불평등 완화는 김 의장뿐 아니라 각국의 화두다. 그러나 기업과 시장을 장악하려 들고, 무리하게 세금을 긁어 은총 베풀듯이 나눠 주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도 세계의 경험이다. ‘경쟁력을 키우는 공교육과 일하게 만드는 복지정책’에 답이 있다. 부강한 나라들이 증명한다.

그럼에도 노 정부는 경쟁 아닌 평등을 내걸고 교육의 ‘하향 평둔화(平鈍化)’를 부채질했다. 또 기업 일자리를 만들 투자 촉진책보다 이른바 ‘사회적(공공) 일자리’의 수 늘리기에 급급해 정부판(版) 비정규직을 출현시키고 재정 부담을 늘리고 있다.

김 의장은 ‘정치 시간표가 다른’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모양이다. 또 민심을 노 대통령보다는 무겁게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민생경제 해법에 대해서는 그가 더 좌파적인지도 모르겠다. 노 대통령과 결이 약간 다를 뿐, 결국은 ‘얼치기’ 좌파 정책과 ‘눈치 보기’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충 비벼 내놓을 조짐을 보인다. 이래서는 경제가 세계의 흐름을 놓친다. 민생에 볕들기도 어렵다.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에도 실패할 공산이 크다.

김 의장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서민경제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리겠다”고 하지만 노 대통령 역시 말은 그렇게 하면서 서민경제를 무너뜨려 왔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