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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월드컵!]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입력 | 2006-05-26 02:59:00

“하마터면 축구선수 될 줄 알았시유 ㅋㅋㅋ….” 한때 축구선수를 꿈꿨던 ‘봉달이’ 이봉주. 지금도 틈만 나면 공을 차고 싶어 발이 근질거리지만 행여 발을 다칠까 봐 꾹 참고 있다. 용인=원대연 기자


○“축구하고 싶었는데 가난해서 육상부에 들어갔구만유”

봉달이 이봉주(36·삼성전자)의 발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왼발 253.9mm, 오른발 249.5mm의 짝발. 상처투성이에 울퉁불퉁 성할 날이 없다. 발톱도 군데군데 피멍이 들어 새카맣다. 게다가 발바닥은 거의 평발에 가깝다. 보통 사람이라면 조금만 걸어도 쉽게 피곤해진다.

봉달이는 이런 발로 15년 동안 34번이나 공식대회 풀코스를 완주했다. 마라토너가 한번 대회에 출전하려면 최소 매주 330km씩 12주 동안은 달려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 봉달이는 36번(2번 도중 기권) 대회에 출전했으므로 훈련 거리만도 14만2560km(3960km×36)에 이른다. 여기에 실제 대회에서 달린 거리(42.195×34+하프마라톤 및 역전대회) 1661.215km를 더하면 14만4221.215km나 된다. 지구를 약 3.6바퀴(지구 한 바퀴 약 4만 km) 돈 셈이다.

“사실 천안농고에 입학했을 때 축구부에 들어가고 싶었시유∼. 근데 집안 형편상 헐수없이 육상부로 들어갔구만유∼. 달리기는 바지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유∼.”

○“서울시청 시절 공차다 다쳐 마라톤 대회도 못 나가고…”

달리기 선수 봉달이는 공을 잘 찬다. 충남 천안시 성거초등학교 시절 그의 축구 실력은 인근에서 알아 줄 정도였다. 포지션은 공격수. 발기술이 빼어난 데다 스피드도 발군이었다. 봉달이는 고등학교를 4년 동안 3군데나 다녔다. 천안농고 육상부가 없어져 인근의 삽교고에 1학년으로 재입학했는데 거기마저 또 해체돼 버렸다. 결국 졸업은 광천고에서 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묵묵히 달리고 또 달렸다. 가끔 공이 차고 싶어 발이 근질거렸다. 고교 시절 대회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다행히 3학년 때 전국체전 10km에 나가 3위로 턱걸이를 한 덕분에 간신히 서울시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울시청 시절 가끔 선수들끼리 편을 갈라 공을 찼는데 그러다가 오른쪽 다리 무릎을 다쳐버렸슈∼. 한 3개월 동안 훈련도 못 하고, 대회에도 못 나가고…다행히 감독님도 같이 찼기 때문에 혼나지는 않았시유∼ ㅋㅋㅋ.”

○“골키퍼는 모든것을 혼자 해야하는 마라톤 선수와 비슷해유”

이젠 공을 찰 수 없다. 오인환(47) 감독이 부상을 염려해 ‘축구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 오 감독은 “나도 축구를 좋아하지만 마라톤 선수와 축구는 상극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거야 막을 수 없다. 봉달이는 2002 월드컵 때 강원 태백시에서 하루 50km를 달리는 고된 훈련을 하면서도 TV를 통해 한국경기를 빠짐없이 챙겨 봤다. 이번 독일 월드컵 경기는 기흥 숙소나 집에서 역시 TV로 볼 생각. 한국이 ‘4강은 좀 그렇지만 8강까지 올라갔으면’ 하고 바란다.

요즘 봉달이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 삼성전자 육상연습장에서 몸만들기를 하고 있다. 아침저녁 각각 20km씩 조깅을 하고 있는 것.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가 확정될 내달 중순 이후부터나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운재 선수를 잴 좋아해유∼. 골키퍼는 외로울 거예유∼. 앞엔 10명의 동료가 있지만 뒤엔 아무도 없잖아유∼.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하는 마라톤 선수나 비슷해유∼. 이운재 선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아유∼.”

봉달이는 기름기가 거의 없어 보인다. 얼굴은 시커멓고 쪼글쪼글하다. 안쓰럽다. 하지만 그러한 피와 땀과 눈물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푸하하하∼. 그래, 봉달아, 공 차고 싶을 땐 달리고 또 달리렴.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