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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원 출발…박수받고 떠난 ‘행복한 CEO’ 존 HSBC 회장

입력 | 2006-05-26 02:59:00


23일 오후 홍콩 퀸스로드의 HSBC 홍콩 본사 28층. 평소 직원들의 구내식당으로 쓰이는 이곳에 400여 명의 외부 손님이 모였다.

은행원을 상징하는 흰 셔츠에 넥타이, 정장 차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비가 내려서인지 지팡이 삼아 우산을 든 노인도 눈에 많이 띄었다.

1998년 5월부터 8년간 HSBC를 이끌었던 존 본드 회장이 마지막으로 홍콩 주주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본드 회장은 2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주주총회를 끝으로 45년간 몸담았던 HSBC를 떠난다.

15분에 걸쳐 최근 경영실적을 설명한 뒤 고별사를 했다.

“HSBC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은행은 한 사람의 힘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HSBC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여러분과 능력 있는 직원들 덕분입니다.”

본드 회장은 21세이던 1961년 홍콩에서 당시 홍콩상하이은행에 입사했다. 옥스퍼드대에 진학하려 했지만 실패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화물선 선원으로 홍콩에 왔다.

은행에 지원했을 때 원칙적으로는 합격이 어려웠지만 은행에서 일하던 학교 친구의 부친이 말을 잘 해준 덕분에 입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록 대학 졸업장은 없었지만 업무에서는 그 누구보다 탁월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더 노력한 끝에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이어 세계 3위 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본드 회장의 고별사가 끝나자 주주들은 앞 다퉈 마이크를 달라고 청하더니 “건강을 기원한다” “그동안 고마웠다” 등의 덕담을 건넸다. 주주로서 회사 경영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마치 오랜 벗을 떠나보내는 듯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본드 회장의 가장 큰 업적은 ‘글로벌’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HSBC가 77개국에 진출해 약 26만 명을 고용한 세계적인 은행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9년 미국 ‘리퍼블릭 내셔널 뱅크 오브 뉴욕’과 프랑스 CCF를 인수했다. 2002년에는 HSBC 역사상 최대 규모인 150억 달러를 들여 소비자금융그룹인 하우스홀드를 합병했다.

은행 순익을 취임 당시보다 3배로 키웠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노력한 경영자로 손꼽힌다.

그러면서도 인터뷰 때마다 자신보다 팀을 내세우고 은행을 먼저 얘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12월 그의 퇴임이 발표되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HSBC의 한 시대가 끝났다”고 논평했다.

한편 22일 홍콩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한 HSBC의 마이클 스미스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 겸 CEO는 “한국을 중소 및 중견기업 금융 부문에서 전략 국가로 삼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승인한다면 수조 원이라도 투자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스미스 대표는 “한국이 금융허브가 되려면 세계적인 글로벌 은행을 유치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과세 투명성과 노동 관행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홍콩=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