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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D-23]매니페스토 선거문화 정착될까

입력 | 2006-05-08 03:01:00

5·31지방선거부터 매니페스토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많은 후보가 헛공약이 아닌 참공약을 준비하느라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지난달 29일 대구의 한 구청장 후보가 초등학교 앞 보행길 보장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들의 시위 현장에 찾아와 해결을 약속하고 있다. 대구=신원건 기자


전남 순천시장 선거에서 맞붙은 열린우리당 이은(李垠), 민주당 노관규(盧官圭) 후보 측은 19일로 예정된 지역방송 TV 토론을 승부처로 보고 비장의 공약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순천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기초단체장선거 매니페스토(참공약 선택하기) 시범지역으로 선정한 전국 22곳 중 한 곳.

세 명의 역대 민선시장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바람에 ‘청렴성’ 문제와 함께 지역현안인 광양만권 개발이 최대 이슈로 떠올라 있다.

각기 전문 해양행정가와 법조비리 수사검사 출신임을 강조하고 있는 두 후보는 경쟁력 있는 공약을 내놓기 위해 ‘공허한 발품 팔기’보다는 자문교수단을 통한 2중, 3중의 자체 검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되는 것, 안 되는 것 다 쑤셔 넣고 보자는 ‘한탕주의식 공약 보따리’가 사라지고 있다. 후보 간 TV토론도 철저하게 정책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헐뜯는 네거티브식 선거운동은 잘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크게 퇴조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선거부터 매니페스토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효과다.

그러나 많은 후보 진영은 ‘매니페스토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참공약을 내놓겠다고 약속은 했는데 날탕 공약이 아닌 진짜 공약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역 단체장에 유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매니페스토 운동이 전개되면서 공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부터 현역 단체장들은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다.

호남지역의 한 현역 단체장 측은 “정책공약을 예산과 연결해 개발할 수 있는 재정 전문가를 지방에서는 찾기 어려워 결국은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솔직히 예산 조달 같은 까다로운 부분은 공무원들이 공약을 만들어 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털어놨다.

당선이 유력한 일부 단체장 후보 캠프에는 해당 지역의 일부 대학교수가 “공약을 개발해 주겠다”고 줄을 서는 ‘현역 프리미엄’ 현상도 벌어졌다. 선거 때 공약 개발을 도와주면 나중에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주하는 연구 용역을 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대가성 공약 제공이 이뤄지고 있는 것.

반면 현역이 아닌 단체장 후보들은 “공약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정보나 자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대전 동구청장에 출마한 무소속 이기호(李基鎬) 후보는 “예비후보자 등록을 하면 지자체에 자료나 현안 관련 브리핑을 요청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열린우리당 서울 강북구청장 예비후보인 강영조(姜英助) 씨도 “예산이나 재정 확보와 관련된 세수(稅收) 자료를 찾기가 어렵고 법규에서 당장 막히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군(郡) 지역 기초단체장이나 광역·기초의원 후보들은 아예 전문가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워 제대로 된 공약 개발을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에겐 절실하지만 점수 낮게 나올 공약은 피하자?=언론이나 시민단체의 평가에 신경을 쓰다 보니 평가점수가 낮게 나올 수 있는 ‘과감한’ 공약은 꺼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었다.

열린우리당 오거돈(吳巨敦) 부산시장 후보 측은 “부산에서는 상수도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며 “인근 지자체에서 상수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공약으로 내놓으면 실현 가능성 점수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한나라당 경기 평택시장 후보인 송명호(宋明鎬) 시장 측도 “허황된 공약이 아닌데도 예산 확보 문제 때문에 획기적인 공약을 내놓기 어렵다”며 “공약이 청사진 제시라기보다는 이미 확정된 것을 조기 실행하겠다는 정도의 평이한 수준에 머문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지역에 절실한 문제 대신 점수가 잘 나올 것 같은 아이템을 공약화하는 ‘얌체파’도 등장한다. 또 중장기적 과제보다는 단기적 현안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범일(金範鎰)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는 “내 임기 동안 끝내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이뤄야 할 지역의 비전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선거일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부분의 후보는 선뜻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타 후보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괜히 먼저 공약을 내놨다가 상대 후보 측이 베낄 수도 있고, 시민단체의 검증에서 흠집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황당한 공약들▼

매니페스토 운동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일부 예비후보는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장밋빛 공약을 내놓아 유권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전북지사 예비후보였던 A 씨는 경선 과정에서 “중국까지 해저터널을 뚫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전북의 발전을 위해선 중국시장 공략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뱃길보다 도로 교통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전북 군산에서 중국 칭다오(靑島)까지 550km에 이르는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 60조 원은 정부와 전북도 예산 등으로 충당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해저터널 건설에는 엄청난 예산이 소요돼 국책사업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공약을 그냥 내놓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구청장에 출마하려 한 B 씨는 신분당선 양재∼논현역 3km 구간의 지하 5, 6층에 20만 평 규모의 지하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해 비판을 받았다.

경남의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C 씨의 대표공약은 ‘대양(大洋) 해군 증강’. 지금의 해군 병력 3만5000명(해병대 제외)을 5만∼6만 명으로 늘려 해당 지자체의 서부지역에 해군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 그러나 군 증강 문제는 기초단체장 차원에서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전남의 기초단체장 후보 경선에 나선 D 씨는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공격적인 인구 증가 정책을 펴겠다”며 “공무원과 지역 내 기업체 직원이 전입하면 시에서 250만 원, 소속 기업에서 250만 원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1000명의 새로운 인구가 전입한다고 할 때 기초단체에서 25억 원, 기업에서 25억 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이나 기초단체에 그만한 재원이 있는지는 차치하고 민간기업이 그런 부담을 하려 할지 의문이다.

김정훈 차장(팀장) jnghn@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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