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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報 독자인권위 좌담]폭로 발언의 보도

입력 | 2006-04-24 03:01:00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윤영철 위원(왼쪽부터)이 21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폭로 발언의 보도’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5·31지방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고 대통령선거 전초전이 시작되면서 정당 또는 후보들 간의 인신공격성 폭로 발언이 잦아졌다. 미확인 소문이나 허위 주장도 일단 보도되고 나면 당사자는 명예에 치명적 손상을 입게 된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1일 ‘폭로 발언의 보도’를 주제로 좌담을 열었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윤영철(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지은(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최현희(변호사) 위원이 토론에 참여했다.》

―먼저 최근의 폭로 발언 사례를 중심으로 언론 보도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짚어 봤으면 합니다.

▽김일수 위원장=2002년 대통령선거 때 야당 후보에 대해 폭로한 20만 달러 수수설,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건설사 비자금 수수설 등 3대 의혹이 사법부에서 모두 허위로 밝혀졌습니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폭로의 추억’을 떠올리며 또다시 재미를 보려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최근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한 ‘경악할 만한 비리’ 발언이 대표적 사례이지요. 잔뜩 호기심만 자극했다가 결국 인신공격성 부풀리기로 드러났지요. 이런 풍토는 지금까지 언론이 단순 인용 보도로 동반자 또는 방조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조성된 측면도 있습니다.

▽윤영철 위원=폭로는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당선돼선 안 될 후보가 가려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근거 없는 폭로 발언은 건전한 정책공방을 방해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자들은 기사를 안 써서 질책당하기보다 쓰는 게 마음 편하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폭로 발언은 언론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지은 위원=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이 ‘경찰의 교통 통제 사실’을 추궁했는데 실제로 교통 통제 혜택은 다른 고위직이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폭로 내용이 일방적으로 보도되고 나면 독자들은 “어머, 그런가”라고 할 뿐 사실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관심을 갖는 경우가 드물어 ‘아니면 말고’식 폭로가 만연하는 것 같아요.

▽최현희 위원=폭로 보도에는 폭로로 인해 이익을 얻는 측의 발언을 받아쓰는 것, 소문이나 풍문을 언론이 주체적으로 파헤쳐서 이슈화하는 것이 있지요. 발언자가 신뢰할 만한 직위의 공인일 경우에는 단순 인용 보도라도 독자들은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언론의 검증 책임이 더욱 무겁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도 인권 문제를 고려해 더욱 신중하게 검토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폭로 발언을 보도할 때 언론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바람직한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모색해 봤으면 합니다.

▽김 위원장=‘경악할 만한 비리’ 발언에 대해 동아일보는 비판적 접근을 했습니다. 여러 지면을 할애해 독자가 ‘코미디’임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게 걸러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기할 만한 보도 태도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폭로 내용은 충분한 반론과 반증의 기회를 갖지 못해 상대방의 일방적 불이익으로 돌아갈 우려가 높습니다. 이번 동아일보의 보도처럼 처리한다면 근거 없는 폭로로 표심을 잡으려는 충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 위원=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는 마음을 가질 때 인신공격성 폭로는 없어지지 않겠지요. 국면 전환용, 위기 탈출용으로 터뜨려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를 간파해서 반드시 폭로 내용을 확인하고, 상대방에게는 충분한 반론의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이 경우 어느 정파에도 이중 잣대를 적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독자의 신뢰를 얻고 차별화를 하려면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세가 절실합니다. 지난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병역 기록 의혹을 제기했던 미 CBS의 간판 앵커 댄 래더 씨는 오보로 판명되자 24년간 지켜 왔던 ‘이브닝 뉴스’의 앵커 자리를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이 위원=폭로성 보도가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나면 사후 처리에 신경을 써야 독자의 신뢰를 얻습니다. 정정과 반론의 기회를 실효성 있게 진행해야 합니다. 정정 보도 역시 폭로성 기사의 비중에 걸맞게 눈에 띄도록 충분히 보장하는 편이 바람직하겠지요.

▽최 위원=2002년 대선의 폭로전에 휩쓸렸던 경험이 국민을 더욱 의연하고 냉정한 모습으로 바꿔 놓은 것 같아요. 그런데 기자들의 지나친 강박감과 경쟁의식을 감안해 메가톤급 폭로가 터져도 진실 여부가 검증되기 전까지는 보도를 자제하자는 ‘신사협정’ 같은 것을 맺을 수는 없을까요. 비록 다른 신문보다 늦더라도 ‘검증을 통해 확인돼야만 쓴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만.

▽김 위원장=메가톤급이라고 해도 진실성이 의심될 때는 큰 지면을 할애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거전에서의 발언은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허위로 드러나면 발언자의 책임을 엄격하게 추궁해야 합니다.

사회=육정수 본보 독자서비스센터장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