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현 중에서도 작은 현이 주관한 고문헌 강좌에 가 봤더니 수강생이 300명이더라. 그런데 한국은 고문헌 전공자를 다 합쳐도 30명 남짓하다.”
“예전에는 사범대생들도 인문대로 몰렸는데 요즘은 거꾸로 인문대 출신들이 사범대와 교육대로 몰리고 있다.”
2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학술진흥재단 3층 회의실에서 열린 인문학 부흥을 위한 국가정책토론회장에 참석한 학자들이 털어놓는 한국 인문학의 현실은 참담했다. 김흥규 고려대 교수는 “솔직히 우리 사회가 인문학자들을 기생충쯤으로 보지 않나 싶다”고까지 자괴감을 표현했다.
인문학 위기의 상당 부분은 인문학자들의 책임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는 “성리학을 수입한 조선은 퇴계와 율곡을 통해 조선적 성리학을 창조했지만 인문학이 서양에서 들어온 뒤 100년이 넘은 지금 ‘한국적 인문학’을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역사 논문과 책이 연간 2000여 편씩 쏟아지지만 ‘학설의 민주화’로 각인각색의 주장만 난무하다 보니 왁자지껄한 시골 장터의 허망함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인문학의 효용성을 따지는 세태도 문제지만 인문학의 풍미를 제대로 맛보게 하지 못한 학계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인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답은 ‘크게 필요하다’는 대용(大用)론과 ‘필요가 없기에 필요하다’는 무용지용(無用之用)론으로 나뉜다”며 “이제는 이를 벗어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이 3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몇 갈래로 의견이 모아졌다. 국가 차원에서 한국적 연관성을 지닌 대형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적합한 연구를 5∼10년에 걸쳐 장기 지원하되, 별도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연구기관을 활용하고, 해외 학자에게도 참여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 빠진 부분이 있다. ‘즐거운 학문으로서 인문학’을 강조한 황지우 한국예술종합대 총장의 발언이다. “작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의 책 100권’을 선정하면서 우리 인문학 글쓰기에 글 읽는 맛과 가독성, 입체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지금 우리 인문학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수사학이다.”
어디 즐거움만 한 효용이 또 있으랴.
권재현 문화부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