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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형곤 씨 사망…“온 국민 웃다 잠들게 하라”

입력 | 2006-03-13 03:05:00


“밤 10∼12시 TV는 고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우리 국민의 잠자리는 언제나 뒤숭숭하다. 밤 10시 넘어서는 정치인들 얼굴이 절대 방송에 안 나오게 해야 한다. 한밤에 TV에 나온 정치인들 때문에 잠을 설치고 가위 눌리는 그런 국민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11일 마흔 여섯이라는 한창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개그맨 김형곤(사진) 씨. 재치 있고 뼈 있는 시사 풍자 코미디로 국민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줬던 김 씨가 숨지기 하루 전인 10일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온 국민이 웃다가 잠들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남긴 이 마지막 글에서도 웃음을 빼앗아가는 방송사와 정치인들에 대해 특유의 익살과 유머로 비판을 가했다.

“나는 25년 동안 방송에 몸담아 온 방송인이지만 우리나라 방송에 불만이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 보통 우리가 잠드는 시간이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일 텐데, 그때 TV에서 밝고 즐거운 방송을 해 주면 좀 좋을까. 재미있는 프로를 보다가 웃으며 잠들 텐데…. 그러나 현재 그 시간대엔 고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들기 전 강도 강간 사기꾼 패륜 불륜 살인 등등의 사건을 보며 잠든다. 그러니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시청자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시청률에만 의존하는 현 방송 행태에 정말 분노를 느낀다.”

그는 그러면서 “‘국민의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하라!’, ‘악몽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방송국 앞에서 1인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익살을 부렸다.

‘웃음의 전도사’다운 말도 남겼다.

“세상에 웃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우리가 돈을 벌려고 애쓰는 이유가 뭔가? 결국 웃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많은 사람이 돈 버는 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웃지 못하고 산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웃음은 우리에게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웃음 곁으로 자주 가야 한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엔도르핀이 팍팍 도는 그런 사람만 만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왜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들을 만나느라 시간을 보내는가…”라고 우리의 일상을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글의 말미에 유머 한 토막을 붙였다. 그런데 그가 전해준 마지막 유머의 소재가 그의 죽음을 부른 것으로 추정되는 심장마비다.

‘시체실에 세 구의 시체가 들어왔다. 모두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니 시체들이 왜 웃는 얼굴이오? 검시관이 물었다. 첫 번째 시체는 복권에 당첨돼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도 심장마비인데, 자기 자식이 1등 했다고 충격을 받아서 죽었답니다. 그럼 세 번째는? 이 사람은 벼락을 맞았습니다. 벼락을 맞는데 왜 웃지?’

“사진 찍는 줄 알고 그랬답니다.”

카메라만 보면 본능적으로 웃는 표정을 짓는 정치인에 대한 풍자였을까.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