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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여린 것에 따뜻한 숨결을… 다섯번째 시집 펴낸 이정록씨

입력 | 2006-03-09 03:01:00

새 시집 ‘의자’를 낸 이정록 시인은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의자 같은 편안한 시집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아버지는 ‘李楨綠(이정록)’이라는 이름을 들고 면사무소로 갔다. 잉크가 마르지 않은 종이를 돌돌 말아 갔더니 ‘푸를 록(綠)’자가 번졌다. 면사무소 직원은 ‘기록할 록(錄)’으로 여기고 적어 넣었다. “이름에 운명이 있나 봐요, 글 쓰는 사람이 된 걸 보니.” 이정록(42) 시인의 말이다.

이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의자’(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5년 만이다. 그는 2001년 네 번째 시집 ‘제비꽃 여인숙’을 내면서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이듬해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충남 천안중앙고 한문 교사인 그가 7일 수업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왔다. “처음엔 제목을 ‘18.44’로 하려고 했어요. 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 18.44m 말이에요. 그런데 속된 말에다가 ‘좀 사, 사’ 이렇게 읽혀서 시집 사달라고 떼쓰는 것 같아 지워버렸어요.”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더라고 이 시인은 덧붙였다. 그래서 특히 마음이 가는 시편 중 하나인 ‘의자’를 제목으로 정했다. ‘의자’는 따뜻한 시다. 시는 어머니가 푸근한 충청도 사투리로 ‘허리가 아프니까/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의자. 시인의 섬세한 눈에는 한창 자라나느라 분주한 꽃과 열매에도 의자가 필요하다(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식물뿐일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의자가 필요하다(‘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대학을 마치고 ‘선상님(선생님)’이 된 아들이 의자 같았다(‘주말엔/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그래도 큰애 네가/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 시인은 술과 지병으로 집안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와 오랫동안 불화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리게 됐다. 그래서 새 시집에는 지금껏 등장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설암에 간경화로 원자력병원에 계실 때/맏손자를 안은 아내와 내가 당신의 머리맡에 서서/다음 주에 다시 올라올게요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와 서울역에 왔을 때/환자복에 슬리퍼를 끌고 어느새 따라오셨나요’(‘머리맡에 대하여’에서) “지금 마음 같으면 그때 아버지를 끌어안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고 이 시인은 돌아본다.

시인은 작고 여린 것들의 존재를 찾아내 다정한 시선을 보내 왔다. “이번 시집에 있는 것들도 다 팔면 500만 원이 안 될 것”이라며 이 시인은 웃는다. 그는 쥐며느리, 옷걸이, 고장 난 보일러 같은 것에 대해 시를 쓴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사물에 시인은 숨을 불어넣는다. 시집을 내면서 “상처도 웬만큼 풀어냈고… 이제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는 이 시인은 “세상에 내보내는 이 시집이 독자들한테 따뜻하게 잘 읽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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