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상황이 크게 바뀌어 2015년까지 군 병력이 절반으로 줄게 되면 양극화 해소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22일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사진) 상임고문의 발언이 군 안팎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23일 “정치인의 개인적 견해”라고 의미를 축소하면서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낸 정 고문의 발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 고문이 병력 감축을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논리가 양극화 해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군 병력을 감축하자는 주장으로 비화할 수도 있기 때문.
일단 군내에서는 정 고문이 내놓은 가설(假說)은 현실성이 낮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병력이 크게 줄면 국방 예산이 그만큼 절약돼 다른 재원으로 쓸 수 있다는 설명은 지금 정부가 마련한 국방개혁안의 내용과 맞지 않기 때문.
지난해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안에 따르면 군 병력은 2020년까지 68만1000명에서 50만 명까지 줄지만 첨단무기 도입과 복무 여건 개선을 위해 국방예산은 해마다 9% 이상 늘어나게 돼 있다.
오히려 국방개혁안의 병력 감축 일정조차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이행될지 불투명하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해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은 “앞으로 15년간 국방개혁에 필요한 예산이 623조 원”이라며 예산 증액을 강조했지만 국방개혁의 원년인 올해 국방예산은 8.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군의 한 관계자는 “국방예산이 계획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존의 병력 감축 일정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결국 정 고문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급히 변해 남북 군축이 이뤄져야 하지만, 그런 상황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국방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나라당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서민을 쥐어짜 세금을 거두겠다는 대통령이나 군사력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 고문이나 정상적인 국정판단력이 있는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의원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방향 자체는 동의한다”면서도 “저출산 때문에 15년 후쯤에는 감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나 그 절약 비용은 군의 현대화나 자주국방에 쓰여야 하는 것이 아닌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