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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두 정권 모시고 살기

입력 | 2006-01-17 03:10:00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에 간 지 8일째다. 당·정·군 지도부 100여 명이 동행했다. 김 위원장은 변화를 위한 출구를 찾고 있는 것일까.

북한 경제는 3중 구조라고 한다. 공식지표로 발표되는 경제를 제1경제라고 한다면 군이 관장하는 부분이 제2경제이고 ‘김 위원장 사(私)경제’가 제3경제다. 체제의 핵심이 쥐고 있는 제2, 3경제는 비밀이니 외부의 눈으로 보면 지하경제인 셈이다.

미국 LA타임스는 한 달여 전 “북한이 위조지폐와 가짜 의약품 제조, 불법무기 판매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5억 달러(약 5000억 원) 정도”라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상당부분이 제2, 3경제로 흘러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현대상선이 북에 비밀 송금한 2235억 원이 김 위원장의 통치자금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주장은 당시 여권(與圈)에서 나왔다. 북한 주민 1인당 국민소득은 2004년 914달러(약 90만 원)로 발표됐다.

김 위원장은 군 장성에게 벤츠 승용차를 선물하는 등 체제유지그룹에 특별한 은전도 베푼다고 한다. 지존(至尊)의 권위와 영도력을 지속하기 위한 비용의 일부다. 한 예비역 장성은 남한 측과 접촉한 자리에서 “장군님이 구하기 힘든 애완견을 주셨다”고 자랑했다.

우리 정부와 민간이 북을 지원한 규모는 작년에만도 비료 35만 t을 포함해 2100억 원이 넘는다. 쌀 50만 t(1500억 원) 차관(借款)은 별도다. 북이 핵을 포기하면 전력 200만 kW도 줄 판이다. 지난해 국내에선 ‘젖소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남한은 땀 흘려 젖소를 길러 북에 우유 짜주기 바쁘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남한 국민의 혈세에 파이프를 대놓고 그 희생 위에서 ‘지속가능한 세습정권’ 유지에 몰두한다. 한 수단이 ‘핵 카드’다. 헐벗고 굶주린 주민들은 체제 존속을 위한 볼모의 처지다.

김 위원장이 남쪽에 돌려주는 것은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일회성 이벤트 시혜 정도다. 더 있다면 ‘민족끼리’를 앞세워 부채질하는 남남 갈등과 한미 균열, 그리고 이에 따라 증대하는 사회혼란과 외교안보 비용 등이다.

우리 국민은 김 위원장에게 할 만큼 하고 줄 만큼 줬다. 그러니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핵을 당장 폐기하라. 중국의 개혁개방에서 배웠으면 실천하라. 인권탄압을 중지하고 주민에게 자유를 주라. 세계 속에서 코리안을 더 수치스럽게 하지 말라.’

차원은 다르지만 노무현 식 통치에도 많은 비용이 든다. 세습왕조 유지비용은 아니지만 표(票)로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치가 결국 국민부담을 키운다. 경제성장을 촉진하면 시장에서 이뤄질 분배까지 ‘세금 더 긁어’ 국가가 직접 하겠다고 고집해 온 결과는 분배 개선이 아니라 양극화 심화다.

‘구세주(救世主) 포퓰리즘’으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은 세계적 경험이고 노 정권 3년의 실험 결과다. 김대중 정부 말년에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던 상하 계층 간 소득격차(소득 5분위 배율)가 현 정부에선 계속 커졌다.

‘국가 만능’의 도그마에 빠진 듯 정부를 비대화시키고 분배와 형평이라는 코드에 집착해 설익은 재정지출 사업을 남발한 결과는 국가채무 급증과 재정적자 확대다. 2002년 말 133조 원이던 나랏빚이 작년 말 248조 원으로 86%나 늘었다. 무능한 코드국정에 따른 비효율이 현재와 장래의 국민부담을 계속 키우고 있는 것이다.

분노를 충동질해 다수표와 소수표를 편 가르는 방식으로 포퓰리즘이 나타나니 갈등 증폭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커질 뿐 아니라 투자와 소비의 해외 탈출도 늘어난다. ‘세계 10위권 경제’를 말하는 나라에서 정권의 힘이 아무리 커도 돈의 생리까지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정 실태(失態)를 걱정하고 비판하면 억지변명과 역비판하느라 아까운 행정력을 남용하고 민간 각계와 싸우는 데 힘을 뺀다. 이 또한 세금 내는 국민에겐 비용이다.

강압적 독재체제나 포퓰리즘 정치에는 선진 자유주의체제보다 훨씬 많은 ‘체제유지 비용’이 든다는 사실은 세계의 정치학이 가르치고 있다. 북이건, 남이건 언제 변화가 올까. 국민도 지켜볼 수만은 없다. 속지 않는 국민이라야 산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