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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행복찾기]낀 세대-위아래 눈칫밥

입력 | 2006-01-03 03:03:00

직급은 조금 올랐지만 몸과 마음은 많이 고달프다. 위에서의 요구는 많아지기만 하는데 부하직원은 거들기는커녕 걸핏하면 치받는다. 그래서 중간 관리층은 ‘낀 세대’라 불린다. 한겨울 오후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셔 보지만 텅빈 마음을 메우기에는 부족하다. 박영대 기자


《대기업에 다니다 외국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권모(43) 씨는 최근 취업 한 달 만에 사실상 강요나 다름없는 사표를 내야 했다.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는 권 씨는 대기업에 있을 때만 해도 상사와 후배 사이의 갈등 조율을 잘하고 일에 대한 추진력도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런데 새로 옮긴 외국 기업에서 그런 ‘능력’은 필요가 없었다. 상사는 “그것밖에 못 하나. 논리적으로 보고서를 내라”고 닦달했고 후배들은 “팀장이 무능하니 우리가 괜히 욕을 먹는다”며 뒤에서 소곤거렸다. 권 씨는 어느 날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

위에서 책임 추궁을, 아래에서 빈정거림을 모두 감수해야 하는 이른바 ‘낀 세대’의 행복지수가 위태롭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직장생활이 더 어렵다’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

대부분 중간관리자들로 구성된 한 기업의 심층 집단토론에서도 낀 세대의 고충이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서도 그들은 ‘익명’을 요구하며 행여 자신들의 넋두리가 새 나갈까봐 전전긍긍했다.

“부하직원들은 할 말 다 하고 상사들은 팔짱만 끼고 있죠. 그 사이에서 양쪽 다 비위를 맞추려면 진땀깨나 흘려야 합니다.”(35세 팀장)

“보고서 마감시간에 상사는 쪼아대죠, 후배들은 다음 날 쉰다고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퇴근하죠. 어떡하겠습니까? 제가 휴일에 나와서 수정해야죠.”(38세 과장)

“우리가 신참 때는 불이익을 당해도 가만히 있었죠. 요즘 후배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부당하다’고 말하죠. 일이 돌아가려면 우리가 그들의 기준에 맞추는 수밖에 없어요.(39세 팀장)”

전문가들은 ‘낀 세대’를 1955∼1970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판 베이비붐 세대로 규정한다. 흔히 ‘475’ ‘386’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 세대는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기성세대와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조직과 국가, 사회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행복에 대한 가치관은 기성세대와 상당히 흡사하다. 반면 개인의 자유를 더 소중히 여기는 그 이후 세대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따라서 낀 세대의 경우 가치관이 다른 부하직원과의 갈등이 심한 경우가 더 많다. 실제 심층 집단토론에서도 후배들에 대한 불만이 더 많았다.

“예전에는 선배가 먼저 휴가나 쉬는 날을 정했죠. 요즘에는 후배들이 ‘그날은 꼭 쉬어야 한다’며 먼저 정해요.”

“후배가 ‘팀장이라는 점만 빼면 모두 같은 팀원인데 왜 뭐라고 하느냐’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져요.”

“동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요. 가끔 일을 부탁할 때도 ‘저 바빠요’라고 매몰차게 거절하죠.”

“사내 연수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밤을 새워 공부하면서도 생색나지 않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죠.”

요즘 대부분의 기업에서 상향평가제도가 도입되면서 낀 세대의 고충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심지어 ‘팀장이 되면 불행이 시작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공기업의 중간간부인 이모(42) 씨는 “과거에 간부들은 결재만 했지만 지금은 일을 가지고 진급하기 때문에 팀장이 됐다 해도 편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의 팀장 박모(35) 씨의 말이다.

“말 안 듣는 부하 직원의 근무평점을 나쁘게 주기도 어려워요. 상향평가에서 ‘공격’을 받기 때문이죠. 언젠가 부하 직원에게 ‘이 보고서 오늘까지 끝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퇴근해 버렸어요. 할 수 없어 결국 제가 남아서 다 끝냈죠.”

40대 후반으로 가면 고용불안에 대한 걱정이 행복에 걸림돌이 된다.

한 공기업 중견간부들의 심층 집단토론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데요, 혹시 그 명단에 내가 들어갈까 봐 걱정이에요. 오죽하면 먹지 못하는 술이 당기겠어요?”(48세 남성)

“지금은 경쟁력이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요. 그러나 5년 후는? 솔직히 자신 없어요. 내색하지는 않지만 늘 걱정입니다.”(42세 남성)

“중간간부이기 때문에 솔직히 수입은 적지 않아요. 그러나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면 남는 게 없어요. 아직 집도 장만하지 못했는 걸요. 잘리기라도 하면….”(45세 남성)

낀 세대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대부분 휴일에 운동하는 게 고작이었다.

전문가들은 직장과 사회의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차피 신세대에서 시작된 변화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낀 세대가 적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사장님은 행복하세요?▼

화학공장을 운영하는 50대 초반의 중소기업 사장 강기환(가명) 씨는 전화벨 소리가 두렵다. 특히 퇴근 뒤 집에서 쉴 때 전화가 오면 공포감에 사로잡힐 정도다.

강 사장의 증세는 10여 년 전 공장에서 큰 화재로 직원 여러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 사고는 없었지만 그는 늘 “혹시 사고가 나면 어떡하나” 하고 노심초사한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그의 머릿속엔 온통 공장 생각뿐이다. 그러다 보니 불면증에 만성두통이 생겼고 가슴까지 답답해졌다. 가족의 시선도 싸늘해졌다. 아내는 “아이들은 커 가는데 집에도 신경 좀 쓰라”고 바가지를 긁었고 아이들은 아빠를 외면했다.

강 사장은 결국 친구들의 권유로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한 달간 꾸준히 정신상담을 받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결과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회사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월급쟁이의 꿈인 최고경영자(CEO)는 얼마나 행복할까.

최근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조사에서 중소기업 CEO의 63.3%가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28.6%는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4%는 ‘지금도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자금 압박이나 조직 관리 등 대부분이 회사에서 생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기업 총수의 스트레스를 평범한 직장인이 헤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도 CEO의 자살은 심심찮게 발생한다. 2003년 미국에서는 단돈 11달러로 시작해 수백만 달러의 회사로 성장시켰던 하인츠 프레처의 자살이 파문을 일으켰다.

임원이 되면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주가나 기업의 명예와 관련이 된다. 따라서 격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을 망쳐도 그런 사실을 숨겨야 한다. 감정 역시 철저히 억제해야 한다.

본보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한 ‘직장인의 행복 찾기’ 설문조사에서도 임원급 이상일수록 감정을 숨기며 직장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원급 이상의 20.7%가 “감정을 숨기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응답했다. 평균치인 10.0%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 기업체에서 CEO 정신상담이 관례이다. CEO가 건강해야 기업도 건강하고 피고용인도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CEO가 정신상담을 받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외국처럼 CEO가 자유롭게 정신상담을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