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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때 사주-간부 무차별 도청 확인

입력 | 2005-12-15 03:03:00

국정원장 앞 일일보고서국가정보원 과학보안국인 8국은 감청장비로 파악한 주요 인사들의 동향을 통신첩보 보고서인 ‘친전’의 형태로 국정원장에게 매일 보고했다. 사진은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도청 사건 수사팀이 증거물로 확보한 친전의 샘플.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인 2001년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조사 대상 언론사를 도청했다는 사실을 검찰이 공식 확인함으로써 DJ 정부의 도덕성 논란이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됐다.

검찰은 현 정부에서는 도청은 물론 휴대전화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감청도 전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현 정부의 도청 여부에 대한 의문이 말끔히 해소됐다고 보긴 어렵다.

검찰은 2001년 국정원이 세무조사 대상 언론사의 사주와 간부 등을 광범위하게 도청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14일 수사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다.

검찰은 조사과정에서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의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고 이로써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국세청 언론사 세무조사에 국정원의 개입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 국정원의 도청 대상에는 세무조사를 받던 23개 언론사 대부분이 포함됐다.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에서 도청 대상자가 특정되지 않은 것도 그만큼 도청의 범위가 넓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사 세무조사는 DJ 정부가 야당과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권 차원에서 추진했다. 국정원은 언론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도청 정보를 청와대 등 정권 핵심과 국세청 등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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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부선 과연 도청 없나▼

검찰은 현 정부에서 도청이 이뤄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DJ 정부 후반기인 2002년 3월 휴대전화 감청 장비가 모두 폐기된 이후 국정원의 도청이 그쳤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 근거로 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이 시행된 2002년 3월 휴대전화 감청 장비를 국정원이 모두 폐기한 점과 8월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 남아 있는 휴대전화 감청 장비를 발견하지 못한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국정원의 도청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우선 휴대전화 감청 장비가 폐기됐다는 2002년 3월 이후에 도청한 내용일 가능성이 있는 자료가 공개된 점이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2002년 9, 10월 국회에서 공개한 국정원 도청 자료 중에는 2002년 3월 이후에 이뤄진 기업인과 정치인 간의 통화 내용이 담겨 있다.

▼DJ는 도청 정말 몰랐나▼

검찰은 국가안전기획부 비밀 도청 조직인 미림팀이 만든 도청 테이프 274개와 유출된 ‘X파일’의 내용을 모두 파악했다. 그중 일부는 수사 과정에서 각종 의혹을 밝히는 데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법적 한계 때문이지만 검찰이 공개한 도청 대상과 사례로 인해 내용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른바 ‘X파일’에 담긴 삼성그룹의 검찰 간부들에 대한 ‘떡값’ 제공 의혹, 삼성의 1997년 대선자금 제공 의혹, 기아자동차 인수 로비 의혹 등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결정이 도청 테이프의 실제 내용을 근거로 한 것인지 의문으로 남는다.

대통령의 도청 사실 인지 여부도 명쾌하지 않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 활동한 안기부 미림팀의 도청 정보는 이원종(李源宗)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과 YS의 차남 현철(賢哲) 씨에게 경쟁적으로 보고됐다.

검찰은 미림팀 보고서가 YS에게 ‘직접’ 전달된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기부장 주례보고 내용에 미림팀 수집 첩보가 포함되는 경우는 있었다”고 설명했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YS가 미림팀의 도청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보기 힘든 정황까지만 검찰이 수사하고 공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DJ 시절 상황도 비슷하다. 검찰은 “DJ가 도청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DJ 시절에도 국정원장의 대통령 주례 보고가 계속됐고, 국정원이 도청을 위해 받은 ‘대통령 승인서’에 대통령이 직접 서명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DJ가 도청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수사결과 발표도 미심쩍다.

검찰이 확보한 도청 자료는 공운영 씨에게서 압수한 미림팀 도청 테이프 274개와 ‘X파일’, 전직 국정원 직원 집에서 압수한 ‘언론대책문건’ 관련 테이프 1개가 전부다.

그러나 유출된 도청 자료가 이게 전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권에 미림팀 보고서가 유출된 데다 미림팀 외의 안기부 부서에서 도청을 하기도 하고 미림팀 ‘A급 망원(정보원)’들이 알아서 ‘손님’들을 도청해 보고해 온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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