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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국보 1호를 바꾸자는 생각의 바탕

입력 | 2005-11-10 03:02:00


국보 1호를 바꾸자는 논의는 새삼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본성을 유감없이 들춰 주고 있어 흥미롭다. 국보 1호를 문화재적 가치에 따라 재지정해야 한다는 발상에는 등재 번호 ‘1호’를 ‘1등’이라 생각하는 우리들의 ‘서열’ 의식이 꿈틀대고 있다. 만일 숭례문이 ‘자격 미달’로 국보 1호의 자리를 가령 훈민정음(국보 70호)에 내준다면 여태껏 우리는 훈민정음을 70등짜리 문화재로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참된 것, 착한 것, 아름다운 것에는 서열이 없다. ‘상대성 원리’는 1등이고 ‘불확정성 원리’는 2등이라는 서열이 있는가. 효자에도 3등, 4등이 있는가. 내 애인의 아름다움은 몇 등이나 되는지 미인대회에 한번 출전시켜 보겠다는 얼간이도 있을까. 도대체 정신적 가치는 서열화될 수 없는 것이며 계량화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다양화될 수 있고 또 다양화될수록 좋은 것이다.

‘귀하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릇 높은 것, 높여야 하는 것, 고귀하고 희귀하고 존귀한 것이 ‘귀(貴)’다. 그 점에선 ‘귀’는 그에 이르는 가능성이 비록 쉽지는 않더라도 모두에게 열려 있는, 모든 것에 편재하는 가치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귀의 개념을 우리는 왕조시대부터 편협하게 ‘높은 관작(벼슬)’과 동일시했다. 그럼으로써 귀는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서열화됐다. 그것이 품계제도다. 그것을 가시적으로 시위하고 있는 것이 덕수궁 중화전 앞에 정1품부터 종9품까지의 서열대로 돌바닥에 세운 품석(品石)이다. 3정승은 정1품, 6조 판서(장관)는 정2품, 참판(차관)은 종2품 하는 따위로.

사람만이 아니다. 관아(관청)도 정2품 관아에서 종9품 관아까지 서열화돼 있었다. 임금의 약을 조제하는 내의원은 정3품 관아고 도성 안의 병자를 구료하는 혜민서는 종6품 관아다 하는 따위로.

왕조시대의 이러한 감투지상주의는 민주공화국이 된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관존민비’ 관행과 ‘쓰고 보자 감투’ 행태 속에 왕성하게 살아 있다. 어떤 정권에서건(국민 대량 학살의 쿠데타로 집권한 정통성 없는 정권이라도) 일단 장차관 벼슬만 하면, 어떻게 벼슬했나(탐관오리가 됐나, 복지부동의 예스맨이 됐나)는 상관없이 족보에 크게 관작이 기록돼서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대학에서조차도 학문 연구보다 학장 총장 선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옷만 갈아입었지 왕조시대의 감투지상주의와 달라진 것이 없다.

벼슬이 다다. 높은 자리에만 있으면 무소불위(無所不爲)라는 분별없는 생각이 이번 국보 1호 논의에는 깔려 있다. 감사원이라면 정1품이나 종1품의 관아는 되겠다. 행정 각 부처를 모두 감사할 수 있으니 그만 한 품계는 돼야겠다. 모든 것을 다 감사한다니 국보 1호의 문화재적 가치도 마땅히 우리가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감사’ 결과 국보 1호는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권고 방침이 밝혀지자 품계가 낮은 문화재청에서는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무소불위의 상급 관아의 뜻에 따라 전부는 못해도 국보 1호는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화답하고 있다.

도대체 중국에도 없고, 일본에도 이젠 없고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문화재 가치의 서열화를 언제까지 우리는 끌고 갈 작정인지. 행복이 성적순이 아닌 것처럼 문화재의 가치도 번호순이 아니다. 진보적인 지식인이 문화재 관리를 책임지게 됐다면 최소한 그런 잘못된 서열주의부터 불식해 버려야 하지 않을까.

예술 체육 등의 분야에서도 아직 대통령상이 1등, 국무총리상이 2등, 장관상은 3등 따위의 관작지상주의의 왕조적 발상 작태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휘장으론 지금도 사대주의 왕조시대 유물인 봉황 마크.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끔찍이 애용하던 그 휘장을 그대로 쓰고 있다. 사회와 문화의 진보를 위해서는 그런 것부터 없애야 하지 않을까.

그런 따위를 그대로 다 애지중지하는 걸 보면 이 정부는 정치만이 아니라 문화에서도 진보 좌파 아닌 수구 좌파임이 틀림없는 것일까.

최정호 객원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