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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최고사령관’ 나올까…지구촌 女정치지도자시대 본격화 조짐

입력 | 2005-10-08 03:08:00


《‘앙겔라 메르켈(51), 엘렌 존슨 설리프(66), 미셀 바셸레(54), 힐러리 클린턴(58), 세골렌 로얄(52)….’ 지구촌에 마지막으로 남은 ‘금녀(禁女)의 벽’을 깨뜨리기 위해 앞장선 여성 지도자들이다. 20세기 초반 여성이 참정권을 쟁취한 이후 여성의 정계 진출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계 최고위직, 즉 대통령이나 총리는 여성들에게 아직도 높은 벽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군소 국가에서 여성이 대통령이나 총리로 선출된 적은 있다. 하지만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강대국에서는 여성이 최고위 선출직으로 오르는 길은 아직 ‘유리천장’에 막혀 있다.》

▽‘유리천장’ 돌파의 주역들=지난달 독일 총선에서 기독민주연합(CDU)을 최다 득표 정당의 자리로 이끈 메르켈 당수가 선두 주자로 꼽힌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내각에서는 13명의 장관 중 6명이 여성이며 의회 의석의 32%를 여성 정치인들이 차지했다. 그러나 여성이 총리에 도전한 것은 1918년 여성 참정권이 허용된 지 87년 만의 일이다.

메르켈 당수는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총리가 되지 못한다 해도 독일 첫 여성 당수라는 족적을 이미 남겼다.


메르켈 당수의 선전은 이웃 국가 프랑스의 여성 정치인들에게도 활력을 불어 넣었다. 사회당(SP)의 로얄 전 푸아투-사랭트 지역의회의장이 2007년 대통령선거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로얄 전 의장은 한 여론조사에서 23%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에 맞서 공화국연합(UMP) 소속의 미셸 알리오마리(59) 국방장관도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UMP의 대통령 후보 선출 때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며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선출된 여성 총리나 대통령이 없다. 에디트 크레송 전 총리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지명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서도 2007년에 첫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유력한 후보들이 거론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뉴욕 주 상원의원이 선두주자로 꼽히는 여성 후보. 콘돌리자 라이스(51) 국무장관은 첫 흑인 겸 여성 대통령 후보감으로 오르내린다.

11일 치러지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첫 민주적인 대선에서 설리프 전 장관도 첫 여성 대통령을 노리고 있다. 설리프 전 장관은 미 하버드대 출신에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까지 지낸 전문가. 축구 영웅 출신의 조지 웨아 후보와 경합을 벌이고 있다.

12월 대선을 치르는 칠레에서도 사회당의 바셸레 전 국방장관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대 남성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이 밖에 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과 헬렌 클라크(56) 뉴질랜드 총리,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68) 라트비아 대통령은 현직으로 활약 중이다.

▽아직 갈 길 멀어=독일 녹색당 카탸 후센 대변인은 “독일의 권력구조는 여전히 남성이 지배하며 ‘게임의 법칙’ 역시 남자가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선출직 최고위직을 여성이 차지하지 못한 이유라는 설명이다.

로얄 전 의장의 출마 선언을 놓고 같은 당 소속 지도자 로랑 파비우스 씨는 “그럼 애들은 누가 보느냐”고 비아냥거렸다. 로얄 전 의장은 자녀 4명을 두었다. 그녀는 “여성 대통령을 맞으려는 준비는 정당보다 일반 유권자들이 앞서 있다”고 반박했다.

ABC방송의 드라마 ‘최고사령관’에서는 여자 미국 대통령에게 측근들이 ‘세상은 매니큐어 바른 손가락으로 핵무기 발사 단추를 누르게 하지 않는다’며 사임을 촉구한다. 시사주간 타임 최근호는 이를 두고 “여성다움을 유지하면서 정계 최고위직에 오르는 일은 여성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