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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TV영화/9일]‘사랑의 블랙홀’ 외

입력 | 2005-10-08 03:02:00

‘사랑의 블랙홀’


◆ 사랑의 블랙홀〈KBS1 밤 12:00〉

시간 여행만큼 영화적인 소재가 있을까? 끈 이론이니 양자역학이니 하는 까다로운 물리학을 전혀 모른다 해도 영화는 모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 ‘백 투더 퓨처’ ‘나비 효과’ ‘터미네이터’ ‘타임 캅’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눈앞의 현실로 재현해 주니까.

시간 여행과 관련된 대개의 영화가 자신이 속한 시공간대를 훌쩍 이탈하는 초월적 경험을 제시해 줬다면 이 영화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아무리 행복하고 짜릿한 하루였다 할지라도 그 하루가 열흘쯤, 아니 한 달쯤 반복된다면 어떨까? 5초 후엔 바람이 불고 10초 후면 누군가와 만나고 한 시간 후엔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매일같이 목격해야 한다면 말이다.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하루에 완벽하게 갇힌 남자, 필 코너(빌 머리). 따라서 필에게 2월 2일이라는 시간은 깨지 않는 악몽처럼 처참할 뿐이다. 투신하고 분신해서 시체가 되더라도 눈만 뜨면 다시 재생되는 하루. 이쯤 되면 ‘하루’는 선물이 아니라 재앙이다.

결국 진정한 사랑에 눈뜨자 시계가 딸각 다음 날로 넘어간다는 얘기는 조금은 도식적이고 교훈적인 점이 없지 않지만 영화적 설정 자체가 주는 재미는 만만치 않다. ‘고스트 버스터즈’의 코믹 캐릭터로 얼굴이 알려진 빌 머리의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몸짓 또한 일품.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장면마다 사소하게 변하는 ‘옥에 티’도 주목할 만하다. 원제 ‘Groundhog Day’(1992년). ★★★

◆ 에어포트〈EBS 오후 1:50〉

조지 시턴 감독의 이 영화는 말 그대로 ‘같은 비행기’에 타서 ‘같은 운명’을 노정하게 되는 재난 영화의 효시 격인 작품. 하지만 이 영화는 공항이라는 공적인 공간에 융해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 주는 데도 탁월하다. 러닝타임 중 반 이상을 승객들이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에 할애하는 영화적 구성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참, 까다로운 탑승 절차를 피해 무임승차에 성공하는 할머니의 귀여운 센스는 정말 백미다. ★★★

강유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