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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의혹 불길 이광재의원-청와대로

입력 | 2005-05-10 03:23:00

취재진 몰려든 李의원 사무실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9일 이광재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장면을 취재하려는 취재진이 이 의원의 보좌진에 의해 사무실에서 밀려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검찰이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을 주도한 전대월(全大月·구속) 씨에게서 나온 돈의 일부가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 선거운동에 사용된 사실을 밝혀내면서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의원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해도 전 씨에게서 돈을 받아 이 의원 선거운동 과정에서 사용한 주변 인물들이 더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게 됐다.

이에 따라 소강 상태였던 검찰 수사가 막판 정치권 배후에 대한 수사에 접어들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검찰 일각에선 “꺼져 가던 유전의혹 불씨가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 의원 소환 임박=검찰은 9일 전격적으로 이 의원 자택은 물론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까지 뒤졌다. 현역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 압수수색은 유신 시절 이후 처음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 국회의장의 동의까지 필요한 사안이다.

검찰은 그동안 3차례에 걸친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서도 이 의원은 제외했다. 그에 대한 수사계획에 대한 언급도 “불가피할 경우 배제하지 않는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검찰이 이날 급박하게 움직인 것은 유전사업을 주도한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가 이 의원 주변 인물에게 돈을 건넸고, 이 돈 중 일부가 이 의원 선거운동에 사용됐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

이 의원은 자신과 무관함을 거듭 강조했다. 전 씨 측도 “(이 의원 선거참모) 지모 씨에게 준 8000만 원은 유전사업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의원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 주변 인사 중 누군가가 저질렀을 수 있는 ‘사고’에 대해서까지는 장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검찰은 지 씨에 대한 조사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이번 주말쯤 이 의원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직접 조사할 방침이다.

▽청와대의 조직적 은폐?=왕영용(王煐龍) 당시 철도청 본부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유전사업에 관해 보고한 시점은 러시아 측과 유전개발회사 인수계약 체결(9월 3일)을 사흘 앞둔 시점이다.

당시 왕 본부장이 만난 사람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에 파견된 건설교통부 소속 김모(46) 행정관. 두 사람은 건교부에 함께 근무한 적이 있어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 본부장이 예고 없이 김 행정관을 찾아가 철도청의 여러 부대사업에 대해 설명했고 유전사업이 극히 일부 포함돼 있었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지난달 청와대가 유전사업에 대해 처음 인지한 게 지난해 11월 국가정보원 보고를 통해서였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특히 김 행정관이 왕 본부장의 보고 내용을 ‘윗선’에 보고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이럴 경우 청와대의 해명은 거짓말이 되고, 유전사업은 몇몇 사람에 의한 무모한 꿈이나 사기극이 아니라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설령 김 행정관 선에서 왕 본부장의 보고서가 머물렀다 해도 청와대의 내부 보고와 검증 시스템 부재에 대한 비판은 면하기 어렵게 됐다. 청와대의 주장과 달리 청와대가 지난달 30일 검찰에 왕 본부장의 청와대 방문사실을 통보한 것은 검찰의 사실 확인 요청을 받은 뒤였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정치권 반응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 사건과 관련해 9일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되고 청와대 관계자가 소환되는 등 검찰 수사가 핵심부에까지 이르자 여권은 숨을 죽이며 사태 추이를 주시했다. 한나라당은 “권력형 비리의 몸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한나라당, 대여 공세 강화=한나라당은 “오일게이트가 권력형 비리였음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며 철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왕영용 당시 철도청 사업개발본부장이 지난해 8월 이 사건을 청와대에 최초 보고했다는 사실이 이날 새롭게 밝혀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 러시아 유전사업 관련 의혹 진상조사단장인 권영세(權寧世)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8월 23일 사업 추진이 철도청장에게 보고된 뒤 31일 왕 본부장이 청와대를 방문해 이를 보고했고 직후인 9월 3일 계약이 체결된 만큼 이들 사안이 각각 독립적이고 아무 연고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와대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도 “짐작했던 대로 청와대의 조직적 은폐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은 권력 실세들이 개입된 대형 권력비리 사건임을 의심치 않는다”며 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한 진상 규명을 거듭 촉구했다.

▽숨죽인 여권, 검찰 수사 주시=청와대는 이 의원 측의 8000만 원 수수 의혹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 중인 데다 청와대와 직접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청와대 최인호(崔仁昊) 부대변인은 “청와대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어 답할 내용이 없다”며 “검찰에서 조사하고 파악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 부대변인은 검찰이 왕 본부장의 지난해 8월 청와대 방문 경위를 수사한 데 대해서도 “그 부분도 검찰이 밝힐 것”이라고 했다.

열린우리당 측도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고 반응을 자제하면서 검찰 수사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병헌(田炳憲) 대변인은 “부패가 있는 곳은 성역 없이 수사한다는 참여정부의 기조에 충실해야 한다”면서도 “이 의원 본인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 주장과 입장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386 측근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이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실시했다는 소식에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 측근은 “이러다 이 의원까지 낙마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곤혹스러워했다. 율사 출신인 최재천(崔載千) 의원은 “대통령 측근이라 해도 수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다만 의원회관을 압수수색한 전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무척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李의원-측근 지모 씨-전대월 씨 어떤 관계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측근 지모 씨가 러시아 유전개발 사건 관련으로 구속된 하이앤드 대표 전대월 씨로부터 8000만 원을 받은 것과 관련해 이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에 대해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등 이 의원을 둘러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이광재, “거리낄 것 없다”=이 의원은 전 씨가 지 씨에게 8000만 원을 건넸는지는 모르지만, 그 돈이 자신에게 전달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9일 보좌진과 대책회의를 가진 후 “후원회 계좌까지 들여다봤지만 지 씨로부터 입금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총선 전 야당이 썬앤문으로부터 96억 원을 받았다고 주장해 85일간이나 특별검사 조사를 받았다. 전 씨가 지 씨에게 돈을 건넸다는 지난해 총선 전후 시점은 특히나 돈이라면 알레르기가 있던 때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철저한 수사로 진실을 밝혀줄 것을 촉구하는 등 여전히 당당한 태도였다. 그러나 이 의원 측은 의혹이 계속 번지는 데 대해 내심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한 측근은 “검찰이 의원회관에까지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 이 의원은 회관에 없었다.

▽이광재-전대월 ‘연결 고리’의 실체는=전매청 공무원 출신의 지 씨는 강원 평창군 평창 읍내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이 의원이 지 씨를 알게 된 것은 2002년 무렵이며 지난해 총선 때 지 씨가 이 의원의 평창지역 연락 총책을 맡으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지 씨는 열린우리당 평창군 당원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전 씨와 지 씨는 오래전부터 친분을 맺어왔다고 한다. 전 씨가 10년 전 사기 혐의로 복역한 뒤 고향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지만 지 씨가 밥도 사주고 용돈도 주고 했으며, 이후 전 씨가 부동산업으로 돈을 번 뒤 둘 사이에 금전거래가 꽤 있었다는 게 이 의원 측의 설명이다.

최근 전 씨가 이 의원 측에 5억 원을 전달했다는 얘기가 나돌았을 때 지 씨에게 확인 전화를 했는데, 지 씨는 “그동안 전 씨와 많게는 1억 원까지의 금전거래가 있었지만 이 의원과 관련된 돈은 없다”고 해명했다는 것이 이 의원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지 씨가 전 씨로부터 받은 8000만 원의 실체와 사용처가 규명되지 않을 경우 이 의원도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 씨는 지 씨를 통해 이 의원에게 접근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