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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최준호]‘배고픈 햄릿’은 몰입할 수 없다

입력 | 2005-03-07 18:03:00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에게도 공연예술을 관람할 권리를 돌려주고 공연을 수도나 가스 전기처럼 저렴한 값에 모든 국민에게 보급한다.”

프랑스 연극배우이자 무대감독인 장 빌라르가 1947년 아비뇽 축제를 창설하며 내건 선언이다. 지금 우리는 이런 권리를 누리는가. 아니, 우리는 과연 공연예술을 공공을 위한 서비스로 생각하는가.

공연예술은 현재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요구와 거리가 멀다. 인스턴트적 달콤함, 한탕주의적 성과, 확대 재생산성, 원가대비 수익성, 가시적 효과, 빠르고 변화무쌍한 디지털 체계 등 어느 것과도 거리가 먼, 지극히 아날로그적이고 수공업적인 분야다. 자연히 대중의 관심과는 먼 거리에 공연예술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연극의 예를 들면, 이 예술은 인간 사회가 존재하기 시작한 때부터 공동체의 희로애락을 공유하게 하고 개개인의 삶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했다. 시민들은 예술가들의 헌신과 봉사에 감사해했다. 일제나 군사독재 같은 어려운 때에도 그들은 우리의 상처 난 가슴을 어루만지며 사회가 공유해야 할 정신적 가치를 되살리고자 노력하지 않았던가.

연극인들은 왜 가난을 각오하며 인생을 무대에 바칠까. 그들은 연습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을 생각한다. 최고의 기쁨은 관객을 만나는 일이며, 작품의 감동과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나누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관객에게 있다. 아무런 만날 기약도, 일면식도 없는 관객을 위해 모든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겨내며 그들은 무대를 지키고 있다. 관객이 공연을 숨죽이며 지켜볼 때, 웃음과 탄식과 긴장이 객석에서 무대로 전해질 때, 공연이 끝나고 박수로 화답 받을 때 수개월의 고통도 현실의 어려움도 이겨낼 용기를 다시 얻는 그들은 미련한 건망증 환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준 감동이나 기쁨, 삶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관객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길도 없지만 그들은 진실을 얘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쳐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관객을 맞았기에 그것으로 보람을 느낄 만큼 순진무구한 이들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존경도, 찬사도, 보상도 그들에게 제공하지 않지만,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며 다행히도 아직 그곳에 있다.

스스로가 배려 받지 못하는 소수자이면서도 늘 소외계층,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찾아다니는 연극 예술가들이 지금 심하게 앓고 있다. 다음달부터 연극배우협회가 파업을 벌이겠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그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삶의 질이 담보된 선진국에서는 그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다르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연극 활성화에 대한 책임 있는 배려와 장치가 다르다. 예술가들이 살 수 있게, 또 육성·발전되게 하는 제도도 현저히 다르다.

다행히 우리에겐 전국에 백 수십 개의 공공극장이 있고, 정부차원의 예술교육 서비스 프로그램도 막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가 자발적, 적극적으로 참여할 차례이다.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그들에게 제도적 배려도 허락하고, 지자체와 정부가 그들을 살려내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들과의 빈번한 만남이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훌륭한 문화 예술 서비스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