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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이상훈]한중일 공동TV채널 만들자

입력 | 2005-01-03 18:15:00


지난해 5월 1일 유럽연합(EU)은 동유럽권을 포함해 총 25개국으로 확대 통합됐다. 세계의 주요 언론사들은 이를 2004년 세계 10대 뉴스로 선정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갈가리 찢어졌던 유럽 대륙이 대통합을 이뤄낸 것이다.

유럽 통합의 원인은 다양한 차원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데올로기적 투쟁이나 군사력의 우열이 아니라 거대한 미국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적 통합의 필요성과 아울러 유럽 고유의 문화와 전통의 공유라는 문화적 가치 창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럽 통합의 결과로 풍부한 문화자원을 기초로 한 문화 관광산업이 가져 올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각 국가의 통합적인 문화가치 창출은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한일 양국처럼 견원지간으로 지내 온 프랑스와 독일이 손을 잡았다. 이는 ARTE라는, 프랑스와 독일 공동방송 채널의 설립으로 구체화됐다. 양차 대전에서 서로 싸운 두 나라 국민 간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공영의 열쇠의 하나를 공동 방송사의 설립 운영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이런 노력은 그 뒤 인접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등으로 확대돼 ARTE는 유럽 문화의 창구이자 용광로가 되고 있다.

광복 60년을 맞는 올해의 한중일 3국 관계는 2차 대전 후 가장 높은 강도의 역사 왜곡과 이에 대한 수정 요구 등으로 역사 문화전쟁의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중화사상의 문화적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리지만 중국에서 한반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이렇게까지 치솟았던 예가 과거에 있었던가. 용사마에 대한 열풍이 도대체 과거사나 독도 문제로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키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이나 했던가. 우리 5000년 역사에서 경제적으로 중국에 우위를 점한 것은 지난 30년에 불과하며 그나마 중국의 잠재력에 밀려 마침표를 찍을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의 우위를 고작 3일천하로 끝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21세기 동북아, 나아가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리더십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제고 또는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21세기 국가의 리더십은 문화적인 역량에서 나온다. 이는 지배나 억압이 아닌 상호이해와 협력, 그리고 공감의 논리에서 출발한다. 일본이 ‘제로(零)센’ 전투기를 앞세워 동아시아를 무력으로 지배하려 했지만 결국은 상처만 남겼다. 이제 일본이 전투기를 띄웠던 그 하늘에 국경을 넘나드는 전파를 통해 문화공동체를 이루려는 선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한중일 3국의 문화가 공존하는 공동채널의 설립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주도해 한중일 공동 텔레비전 채널을 만들면 한류 열풍을 지속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고품질 문화채널 ARTE 창설을 주도한 프랑스가 다시 국가적 문화적 리더십을 되찾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 앞서 하루빨리 선도적인 준비와 제안을 통해 동북아시아 문화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이상훈 전북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