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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대재앙]“끔찍한 기억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입력 | 2004-12-30 18:23:00

부상자 천신만고 끝 귀국태국의 휴양지 푸껫에서 해일로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한 여성이 30일 대한항공편으로 입국해 기내에서 119구급대원들에 의해 침대로 옮겨지고 있다. 인천=연합


동서남아시아 지진해일로 태국 푸껫 등지에서 목숨을 잃은 한국인의 시신과 부상자들이 30일 속속 입국하면서 인천국제공항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오전 10시경 푸껫에서의 마지막 정기 여객기인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한 김모 씨는 다리가 골절된 상태. 당시 상황에 대해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취재진의 질문에 짜증을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깨와 늑골 골절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민아 씨(29·여)는 비행기에서 내린 뒤 눈물을 멈출 줄 몰랐다. 여객기 도착 이후에도 30분 동안 기내에서 안정을 취하며 승무원들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푸껫에서 부상자와 함께 돌아온 대한항공 항공보건팀 의사 한복순 씨(50·여)는 “한국인 부상자들이 푸껫의 여러 병원에 분산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주로 골절상 등 가벼운 부상을 입은 환자들이 이번에 귀국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막내딸 김모 씨(45)와 단둘이 해외여행길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배무출 씨(75·여)의 시신이 도착하자 공항의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변했다. 이번 사고로 김 씨 역시 왼쪽 다리를 잃은 것으로 알려져 유가족들은 더욱 침통해했다.

배 씨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가족들에 따르면 막내딸인 김 씨가 최근 신상에 어려움을 겪어 어머니가 딸을 달래주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났다는 것.

한 지인은 “마음을 정리하겠다며 나선 것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이 됐다. 사고 당일인 26일 아침 ‘저녁 비행기로 출발하니 내일 아침이면 도착한다’는 마지막 전화를 걸어 왔다”며 오열했다.

사고 당시 모녀는 푸껫 해변을 다정하게 산책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급작스러운 해일 속에서도 김 씨는 어머니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지만 계속 몰아치는 엄청난 파도에 손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배 씨는 목숨을 잃었고 파도에 휩쓸려 인근 하수도 맨홀에 빠진 김 씨 역시 왼쪽 다리에 입은 상처에 세균이 침입해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배 씨와 별도로 이날 오후 타이항공편으로 귀국한 김 씨는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이나 자신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며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가톨릭 신자인 배 씨의 입관식은 오후 3시경 가톨릭 의식에 따라 치러졌다. 31일 오전 8시 발인으로 할머니가 평소 다니던 송파구 오금동 모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