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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방형남 칼럼]자이툰부대 ‘출구’를 생각하라

입력 | 2004-12-15 18:15:00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부대 전격 방문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국민과 언론이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니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까지 간접적으로 감사전화를 했다고 한다. 지금쯤 청와대에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를 떠올리며 행복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춰야 한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성공적으로 진행됐지만 자이툰부대가 안고 있는 모든 고민이 한꺼번에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병통치약이라도 만든 것처럼 마냥 들뜰 때가 아니다.

▼장병 사기 떨어지지 않았을까▼

자이툰부대 파병 기간 만료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국회는 지난달 정부가 제출한 ‘국군부대의 이라크 파견연장 동의안’을 외면하고 있다. 자이툰부대 장병들은 지난주 목요일 파병연장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은 채 정기국회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루 전 대통령의 격려방문 때 부대를 감쌌던 열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은 것은 아닐까.

국회의 파병동의안 처리 지연은 처음부터 눈앞에 닥친 걸림돌 제거에 급급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자이툰부대 파병 과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라크 파병을 위한 발걸음은 지나치게 무거웠다. 자이툰부대는 정부가 파병하기로 결정한 지 거의 1년 만인 9월에야 아르빌에 배치됐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파병 요청을 받은 일본은 우리보다 7개월 앞서 자위대를 보냈다.

결과론이지만 한국이 조기에 파병했다면 지금쯤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파견 3개월 만에 자이툰부대를 철수시키면 국가적 신뢰가 추락할 우려가 있다’는 군색한 논리 대신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년 이상 미국과 이라크를 도왔는데…’라며 목에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임시국회가 개회 중이고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의지, 파병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를 고려하면 결국에는 파병 동의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회가 동의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해 초읽기에 몰리는 바람에 다음 단계, 즉 ‘파병기간 연장 이후’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자이툰부대가 이라크에 무한정 주둔할 수는 없다. 주둔기간이 길어지면 부담과 위험도 늘어난다. 이라크의 미래가 밝은 것도 아니다. 이라크에 병력을 보낸 여러 나라가 이미 철군을 했거나 철수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1월 30일로 예정된 이라크 총선을 철수의 계기로 삼으려는 국가도 늘고 있다. 일본도 자위대 파병기간을 1년 더 연장했지만 ‘치안, 다국적군의 활동변화 등을 주시, 필요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강구한다’는 단서를 달아 조기 철수의 길을 열었다.

▼철군 시나리오 준비해야▼

파병기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미국이 ‘이젠 됐으니 한국군을 철수시켜라’는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스스로 철수시기와 조건을 담은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할 만큼 했으니’ 또는 ‘우리가 정한 조건이 충족됐으니 철수하겠다’고 당당하게 밝힐 준비를 해야 한다.

다행히 정부가 마련한 동의안에 ‘단, 필요시 동 기간(2005.1.1∼12.31) 이전이라도 철수 가능’이라는 단서가 들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국회 국방위원회의 찬반 토론에서도 자이툰부대 철수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가 파병연장에 몰두하느라 철수 쪽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일본에서 왜 장관급 인사들이 공공연히 “중도 철수방안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부터라도 자이툰부대의 ‘출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