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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정래권]‘환경’외면하면 성장도 없다

입력 | 2004-10-17 18:33:00


지난달 30일 러시아 정부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를 비준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국내에서도 ‘발등의 불’ ‘산업계 비상’ 등의 다급한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경고음들이 ‘환경’을 ‘경제’에 부담이나 주는 ‘추가비용’ 내지 ‘걸림돌’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교토의정서는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 특히 석유 석탄 등의 화석 연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방출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며, 에너지 효율 향상 및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넘는 상황에서 ‘에너지 절약’이라고 하면 ‘애국’으로,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감축’이라고 하면 우리 산업의 위기로 생각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에너지 절약이 바로 온실가스 감축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가당착적 사고방식은 환경이 경제에 부담을 주는 추가비용에 불과하다는 뿌리 깊은 1970년대식 산업발전 위주의 고정관념과 우리 경제에 타격이 될 정도의 과도한 온실가스 삭감의무 부담을 강요당하면 큰일이라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지나친 패배주의와 자신감의 결여에 따른 열등감의 표출일 뿐이다. 선진국들도 선발 개발도상국인 한국이 지구 환경 문제에 전향적 자세를 보여 후발 개도국에 모범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지 과도한 부담을 주어 한국 경제성장 자체에 지장을 주겠다는 입장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달성 가능한 에너지효율 향상 목표를 설정하고 추구하는 것은 에너지비용 절감과 산업경쟁력 향상뿐 아니라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더구나 기후변화에 따른 대형 태풍의 피해를 해마다 겪으면서도 기후변화를 남의 일 또는 공연한 부담으로만 생각하는 근시안적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 경제와 환경이 하나라는 발상의 전환이 우리사회에 자리 잡아야 할 때다. 불황 속의 참살이(웰빙) 열풍처럼 폭발적으로 높아가는 쾌적한 환경과 삶의 질에 대한 욕구를 새로운 환경산업과 부가가치 창출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는 게 국민소득 2만달러의 지름길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를 이미 달성한 선진국들이 보여주듯 과거 산업발전 방식에 따라 투입량만 2배로 늘린다고 국민소득 2만달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산업, 기술과 인프라에 투자함으로써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전략의 질적인 전환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올해 8월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환경국장으로 부임한 필자는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릴 환경장관 회의의 주제를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으로 정하고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이 주요 국가목표로 추구하고 있는 ‘경제성장’과 ‘환경’을 통합하는 전략에 대해 논의토록 할 예정이다.

한국의 고도성장과 이에 따른 환경 파괴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과 환경을 함께 추구하는 ‘청정 성장을 위한 서울 이니셔티브’를 제창할 경우, 이 지역 국가들의 호응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와 산업계 및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정래권 유엔 아태경제사회위원회 환경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