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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兵風’위기의 프로야구

입력 | 2004-09-10 18:14:00

텅빈 잠실구장프로야구의 막판 순위 다툼이 불을 뿜고 있지만 관중석은 텅 비었고 선수들은 생기를 잃었다. 9일 잠실야구장은 한국시리즈 직행을 다투는 두산과 현대가 맞붙은 빅게임이었지만 2622명의 관중만 입장해 ‘병풍(兵風)’의 충격을 실감케 했다. 연합


《“잠도 잘 안와요. 앞으로 또 누가 어떻게 될지….” 요즘 프로야구에 관계된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며 한숨을 내쉰다. 프로야구를 강타한 병역비리 태풍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에는 연일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프로야구 선수들이 나온다. ‘가을 축제’라는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한창 뜨거워야 할 경기장은 썰렁한 파장 분위기. 관중석은 텅 비었고 흥겨운 응원을 이끌어야 될 치어리더들은 자취를 감췄다. 병역피리 파동이 불거져 나온 4일 이후 프로야구 평균 관중은 2000명에 훨씬 못 미쳤다.》

9일 전국 4개 구장을 찾은 관중은 6313명. 평균 1500명이 조금 넘는 수준. 시즌 평균 460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동료들이 소환돼 어수선한 가운데 남은 선수들은 승부에 별 관심이 없는 듯 그저 경기가 빨리 끝나기만 바라는 눈치.

9일엔 4경기가 모두 3시간 안에 끝나는 보기 드문 장면이 펼쳐졌다. 사직 롯데-LG전은 2시간22분 만에 끝났다. 시즌 평균 경기시간 3시간10분보다 무려 50분 가까이 당겨진 것. 이런 우울한 모습에서 1982년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프로야구가 피부에 와 닿는다. 병역비리 브로커의 수첩에 오른 프로야구 선수는 당초 경찰측이 발표한 50명 선을 훨씬 뛰어넘는 110명 이상. 소속 선수 39명이 포함된 구단까지 있다. 1군선수는 8개구단에서 40여명.

공개된 ‘리스트’에 병역 의무를 마친 선수까지 포함돼 있는 등 다소 현실과 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번 파동이 대규모이며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대목에서 프로야구 전체의 도덕 불감증을 드러내는 치명적인 악재가 분명하다.

한 야구인은 “관련된 선수가 많다 보니 자칫 비리가 적발되더라도 몸으로 때우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에 따라 너도나도 유혹에 넘어갔다는 오해를 팬들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20대 초중반 한창 뛸 나이에 군복무를 하게 되면 사실상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하고 주전급의 경우는 공백기 동안 수억원의 금전적인 손실을 보게 돼 위험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는 뜻. 게다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자유계약(FA)제도도 선수들의 그릇된 결정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로 프로야구는 정규리그 잔여경기와 플레이오프에서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다. 병역비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고 팬들의 외면 속에 경기장은 썰렁할 게 분명하다. 설사 관중의 발길이 야구장으로 이어진다 해도 일부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공백에 따른 전력 차질로 경기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국 사무총장은 “경기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계속될 것”이라며 시즌 중단설을 일축했다.

병역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에이스급 선수는 “죄송스러운 일이 벌어졌지만 유니폼을 입고 있는 동안은 열심히 하겠다”며 “야구는 계속되니까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국민 스포츠라는 프로야구는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더욱 큰 문제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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