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 공방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연일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대표의 사상전 공세 제기를 '낡은 정치의 전형'라고 몰아붙였다. 한나라당은 여권의 공세를 '역(逆)색깔론'으로 맞받아치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정체성 혼란을 집중 공격했다.
▽열린우리당, "사상논쟁은 낡은 정치의 전형"=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26일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국가 정체성 공세에 쐐기를 박았다.
천 원내대표는 이날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야당이 국가 정체성이니 하면서 사상 논쟁을 하자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박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대통령이 답할 차례'라고 말하는데, 이는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낡은 정치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정치권에서 사상 논쟁이나 벌이면 되겠느냐"라며 "박 대표와 한나라당이 우리를 정쟁의 수렁으로 끌어가려 해도 끌려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명숙(韓明淑) 상임중앙위원도 "최근 야당이 제기한 사상논쟁, 색깔론, 신행정수도 건설 논란 등이 국론분열로 이어진 측면이 많다"며 "한나라당은 정쟁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정당의 면모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현미(金賢美) 대변인은 박근혜 대표의 부친인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과거사 문제를 끄집어냈다.
김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반대자라는 이유와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으로 사형과 고문을 하고, 직장에서 쫓아내고 수십 년간 거리를 전전하게 했던 데 대해 박 대표가 TV에 나와서 '죄송하다'는 말로 사과가 됐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이 감내해야 삶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여권의 공세엔 정치공작 냄새"=휴가 중임에도 서울 염창동 당사에 들른 박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의 정체성 혼란을 거듭 비판했다.
박 대표는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 대통령에게 '간첩을 민주화인사라고 한 정부가 민주주의 정부냐' '북한 경비정의 NLL(북방 한계선) 침범에 대해 재발방지 요구도 못한 데 대한 입장이 무엇이냐'고 물었으나 대답을 못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과거가 어떻고, 박 전 대통령이 어떻다는 얘기를 자꾸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정치권 일각에서 박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자신의 사과 요구에 대해선 "20년간 줄곧 사과하지 않았느냐"며 "그렇게 사과해왔는데 또 사과하라고 하면 사과하면 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날 주요당직자회의도 여권의 공세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해버렸다.
김형오(金炯旿) 사무총장은 "노무현 정권이 유신 체제까지 박 대표에게 직접 대입시키는 것을 보니 여권의 과거사 진상 규명이 결국 박 대표를 겨냥한 '표적규명'이자 정적(政敵) 흠집내기임이 드러났다"며 "열린우리당 중진들이 저급한 표현으로 싸움을 거는 것을 보니 '제2의 병풍(兵風)'같은 정치공작적 냄새가 난다"고 비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