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12일 직원 조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라며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강하게 주문했다.
외교부 내에선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후 쏟아진 국민적 비판에 “해도 너무한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지만 반 장관은 결국 ‘내 탓이오’를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그동안 외교부가 위기 때마다 다짐한 변신 노력이 매번 용두사미로 끝났기 때문에 반 장관의 굳은 다짐도 ‘헛구호’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재외국민보호 관련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영사 기능 강화’를 약방의 감초처럼 ‘처방전’에 포함시켜 왔지만 실천된 적은 거의 없다.
4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보고된 ‘외교부 2004년도 추진계획서’에도 △영사 민원 콜센터 설치 △해외 사건 사고에 대한 즉시 대응체제 구축 △영사인력 인센티브제 도입 같은 개선 방안이 나열돼 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거의 해마다 발표된 영사 업무 개선 방안들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은 그만큼 변한 게 없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반 장관은 5일 실국장 회의에서 “해외공관에서의 정치인 영접 관행에 대한 근본적 개선책을 마련해 실천해 나가자”고 지시했지만 이 역시 흐지부지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지난해 3월 노 대통령이 “더 이상 해외공관이 정치인을 접대하는 곳이 돼선 안 된다”고 지시한 뒤 수개월간의 실무 작업을 거쳐 정치인 영접을 간소화, 투명화하는 획기적 개선안을 만들었지만 대국회 관계를 의식해 결국 시행을 유보한 일이 있기 때문.
외교부의 일부 간부들은 “우리(외교부)가 먼저 치고 나가긴 쉽지 않다. 정치인들이 먼저 ‘과도한 영접 거부 선언’ 같은 것을 해주면 모를까…”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위기 탈출은 말뿐인 자성과 자각만이 아니라 이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부형권 정치부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