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가 탄핵방송의 편파 여부에 대한 심의(16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효성(李孝成·사진·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방송위 부위원장이 ‘탄핵방송이 편향적이었다’는 한국언론학회의 보고서를 반박하는 기고문을 인터넷 매체에 게재해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부위원장의 기고문을 읽은 독자들은 댓글에서 “영국 공영방송 BBC의 공정성 지침 원문을 잘못 해석하고 특정 부분을 무시한 채 인용함으로써 전체적인 뜻이 잘못 전달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방송위 부위원장의 부적절한 처신 논란=이 부위원장은 11일 오후 ‘오마이뉴스’ 등에 게재한 기고문 ‘공정성은 기계적 균형과 동의어 아니다’에서 BBC ‘제작자 지침(Producers' Guidelines)’을 인용해 “한국언론학회의 탄핵방송 분석 보고서는 BBC의 공정성 원칙을 도외시하고 공정성을 수학적 균형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언론학회는 탄핵방송을 양적 질적으로 분석해 “편향적”이라는 결론을 내놨을 뿐이며 수학적 기계적 균형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부위원장의 기고는 K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장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방송위가 심의를 앞두고 오히려 방송사들의 손을 들어준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판사가 판결을 앞두고 한쪽의 견해를 받아들여 판결의 신뢰도를 훼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 방송위원은 “위원은 정치적 중립을 준수할 의무가 있고 위원회는 합의제 기구로 운영된다. 그런데도 이 부위원장이 개인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밝힌 것은 유감이다. 내부적으로 이 부위원장의 발언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BBC 제작자 지침 오역(誤譯) 논란=이 부위원장의 기고 중 BBC 제작자 지침을 잘못 해석한 부분이 있으며 중요 대목을 삭제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의 대목은 ‘(정치적 논란을 보도할 때) 상이한 주요 견해들은 적절한 무게가 주어져야만 한다(the main differing views should be given due weight)’는 것. 이 부위원장은 이를 “지배적 의견을 더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공정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ID ‘박문수’는 댓글에서 “이 부위원장은 견해들(views)을 단수(view)로 잘못 보고 하나의 견해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했다”며 “원문은 지배적 의견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주요 의견들을 군소 의견들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룬다는 뜻”이라고 반박했다. 또 ‘학자 양심’은 “BBC 제작자 지침은 ‘논란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자사의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 (The BBC is explicitly forbidden from broadcasting its own opinions on current affairs)’고 명시하고 있는데도 이 부위원장이 이 부분을 생략해 전체적인 뜻을 다르게 전달했다”고 지적했다.
BBC 제작자 지침은 공정성, 정확성, 사생활 보호, 폭력성 등 11개 항목에 걸쳐 제작 일선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담고 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학회지적은 거두절미…반박주장만 되풀이▼
KBS와 MBC가 11일과 12일 뉴스와 매체비평 프로그램 등을 통해 탄핵방송의 편향성을 지적한 한국언론학회의 보고서에 대해 그 내용은 도외시한 채 이를 반박하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는 영국 공영방송인 BBC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와 관련한 오보파동 때 BBC가 오보를 냈다고 결론내린 ‘허튼 조사위원회’의 청문회를 실시간 중계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KBS와 MBC는 ‘탄핵관련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 멘트 중 탄핵반대 27건, 탄핵찬성 1건’ 등 언론학회의 보고서 내용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KBS는 11일 ‘뉴스9’에서 “시민 언론단체들은 언론학회의 보고서야말로 평가가 제멋대로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KBS ‘미디어 포커스’는 12일 “(보고서가) 기계적 균형이라는 시대착오적 잣대를 들이댄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MBC도 11일 ‘뉴스데스크’에서 앵커 멘트로 “방송학회와 언론학회에서는 이 보고서가 편향적이라고 반박한다”고 말해 마치 대다수의 언론학자들이 이 보고서를 반박하는 것처럼 보도했다.
MBC ‘신강균의 뉴스 서비스 사실은…’은 11일 “보고서가 억울한 약자와 부당한 강자를 대비시켜 방송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도 억울한 약자의 입장에서 부당한 강자를 감시하겠다”며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떼어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비아냥댔다.
박명진(朴明珍) 한국언론학회 회장은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탄핵방송 관련 논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된 게 수치에 기반을 둔 기계적 중립성이었기 때문에 질적 분석에 정통한 연구 인력을 포함시켜 프레임이나 담론 같은 질적 분석을 했다”며 “보고서가 기계적 중립성만 주장했다는 지적은 양적 부문만 보고 질적 분석을 읽지 않은 탓”이라고 반박했다.
황근(黃懃)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KBS MBC가 보고서 내용을 반박하는 주장만 내보내는 것은 기본적인 공정성 준수 규정을 또다시 위반하는 것”이라며 “방송위가 언론학회에 탄핵방송 분석을 의뢰할 때는 문제 삼지 않던 방송사들이 그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자 음모론까지 제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