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심야 운전을 하다 보면 요금을 안 내고 달아나는 손님이 많아요. 지갑에 돈이 없기 때문이죠.”
8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한 택시 운전사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대통령은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하는데 택시를 한번 타든지 재래시장에 가보라고 하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근처에서 조그만 액세서리 가게를 하는 A씨. 그는 “이 근처 영세 상인들은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이 안 되면서 월세를 내기도 어려워 가게를 내놓고 싶어 하지만 문의하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7일 17대 국회 개원 축하연설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또는 필요한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서 불안을 증폭시키고 위기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이 나온 뒤 각 언론사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노 대통령의 경제인식을 비판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상당수는 영세상인, 택시 운전사, 중소기업 근로자, 신용불량자 등 힘들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목소리였다.
한 네티즌은 “집단이기주의 평등 분배 명분만 앞세우고 무엇이 국민을 위한 민생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반쪽 대통령만 한다면 국가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느냐”며 제발 민심과 민생을 있는 그대로 살피라고 호소했다.
경제의 성장엔진이 멈추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극단적으로 말해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해외로 ‘탈출’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배경 없고 돈 없는’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은 그럴 수도 없다.
노 대통령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를 자주 강조한다. 상대적으로 중산층 이상보다는 서민층에서 지지기반이 강하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 정부 출범 후 경제 실정(失政)에 따른 경기침체의 고통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은 서민층이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벅차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위기론이 과장됐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배극인 경제부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