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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강신익/사람들 ‘사이’에서 찾은 해답

입력 | 2004-06-02 18:47:00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모두 같은 옷을 입어야 했다. 목 끝까지 올라오는 칼라의 호크를 채우지 않거나 규격에 어긋나는 옷을 입으면 영락없이 학생주임 교사나 선도부에 적발되어 벌을 서야 했다. 남과 ‘다른’ 것은 바로 ‘틀린’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이런 문화에 순응하는 모범생이었다. 대학에서는 질병의 이론과 그것을 병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방법을 배웠고, 수련과정을 마칠 즈음에는 유능한 치과의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다.

그러나 임상교수가 되어 환자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드나들게 된 실험실의 경험도 그 자신감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내가 배운 ‘과학적’ 의학은 모든 사람의 ‘같음’을 전제로 하는데 나는 그 전제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현대의학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며 무척이나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차이’의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까. 이렇게 ‘같음’에 대한 의심과 ‘차이’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나의 여행이 시작됐고 나는 개업의가 되었다.

그러나 개업의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의 정형화된 진료 틀을 벗어날 수도 있었고 돈에 대한 욕심도 채울 수 있었지만, 수많은 환자를 만나면서 이제는 거꾸로 그들의 엄청난 ‘차이’가 나를 괴롭혔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환자들은 너무나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요구를 해결하기는커녕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같음’을 거부하고 ‘차이’를 추구한 죄의 값을 치르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떠날 때가 된 것이었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의 고민을 풀어 줄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 믿었다. 과연 있었다. 무조건 짐을 쌌다. 이번에는 좀 먼 곳이었다. 이렇게 나는 뒤늦게 유학생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무척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고민했던 ‘차이’에 대한 해결책이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돌아와서 다시 교단에 서고 나서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이제 나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며 서로의 ‘사이’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로의 전환에 있다고 믿는다. 배움은 학생과 선생의 ‘사이’에서 일어나며 병의 치유 또한 환자와 의사의 ‘사이’에서 발생한다. 나를 버리고 서로의 사이에 서서 그 사이의 시각으로 나를 돌아보는 것이 진정한 가르침이며 치유가 아닐까.

최근에 나는 그 두 가지 ‘사이’ 중 하나를 버리기로 작정했다. 의사의 길을 접고 순수한 의미의 선생이 되기로 한 것이다. 장차 의사가 될 학생들에게 의사와 환자의 ‘차이’뿐 아니라 둘 ‘사이’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나는 내가 이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이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틀림없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 행복을 나누어 주고 싶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약력 : 1957년생. 서울대 치대 졸업. 수련의 과정을 마친 뒤 부산 백병원에서 근무하다가 개업했으며 영국에서 의철학(醫哲學)을 공부했다. 1학기부터 임상에서 손을 떼고 의철학, 의료인문학, 의료윤리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