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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팍스아메리카나-이슬람 대충돌 해법은?

입력 | 2004-05-21 17:26:00

(왼쪽)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9·11테러. 브루스 페일러는 9·11테러의 현장을 목격한 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공통적으로 존중되는 아브라함을 통해 화해의 길을 모색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오른쪾)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중무장을 하고 경계 중인 미군 병사들. 세계체제론자인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는 한반도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불가피하게 줄어들게 돼 있다고 주장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이라크전을 바라보며 많은 전문가들이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뚜렷한 답은 보이지 않지만 미국과 이라크를 중심으로 한 이 갈등이 세계 패권질서의 변화와 오랜 종교 사상의 대립이라는 두 축으로 이뤄져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패권주의의 대체와 종교적 대화의 두 방향에서 현재의 이라크 사태 해결방안을 찾는 책을 소개한다.》

◇미국 패권의 몰락/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한기욱·정범진 옮김/448면 1만5000원 창비

주한미군의 일부 이라크 차출 문제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 사안은 직접적으로는 한국의 안보, 보다 크게는 한미동맹의 재정립 문제와 직결된 중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 50여년간 미국 중심의 국가 운영을 해온 우리로서는 한미관계의 핵심적 기초인 군사동맹에 변화가 온다는 차원에서 더욱 그렇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통찰을 빌리면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동맹을 군사 위주에서 진정한 지정학적 차원으로 변화시키고, 우리 역사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계기로 삼아야할 지 모른다. 더 나아가 미국의 영향력은 불가피하게 줄어들게 돼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 책에는 미국의 권력,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변화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거시적인 분석이 제시돼 있다. 세계가 미국 유럽 동아시아의 삼분구도, 북반부 대 남반부, 다보스(세계경제포럼) 대 포르테 알레그레(세계사회포럼) 등 3중의 분열구도로 편성돼 있다는 분석은 우리 사회가 차분히 새겨봐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중국의 경착륙, 북한의 경착륙에 대해 걱정이 많고 은연중 한국의 경착륙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근거 없는 걱정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걱정할 문제는 미국의 경착륙이며, 미국이 주도한다고 여겨지는 세계의 경착륙 문제라는 것이 이 책의 강조점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들어 미국의 경착륙이 가속화되고 있고, 그 정치행동에 이렇다 할 제동을 걸 세력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워싱턴 정가 매파들의 계산보다 오사마 빈 라덴의 계산이 더 치밀하다는 분석도 신선하다. 빈 라덴의 행동 목표가 미국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정권의 타도였다는 분석은 늘 문제의 뿌리를 짚어내는 월러스틴 교수의 인식론을 잘 보여준다.

“2004년은 부시의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분석적 예언 역시 명료하다. 그러나 월러스틴 교수의 관심은 부시의 재선 여부에 있지 않다. 그의 관심은 500년 역사를 가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구조적 위기를 맞아 일대 혼돈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인류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민주화된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행기에는 인간 의지의 위력이 크고, 그 개입의 정도와 방향에 따라 다음 세계가 결정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복잡한 현안들에 함몰되어 이런 중장기적 세계체제 변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그러나 그 관심이 우리의 현안들 가령 북핵문제,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재배치, 한미동맹 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간파해야 한다. 따라서 세계적 변화에 대한 냉정한 분석, 도덕적 우위를 갖는 선택, 이에 합당한 정치적 실행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임무다. 그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 국가방략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이바지하는 길이다. 한반도와 세계체제는 너무나 깊게 맺어져 있기에 그렇다.

이수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leesh@kyungnam.ac.kr

▼종교간 대화로 증오시대 끝낼때▼

◇중동의 화해/브루스 페일러 지음 이병걸 옮김/303쪽 1만5000원 인바이로넷

브루스 페일러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의 첫 저서 ‘절하는 것을 배운다(Learning to Bow)’는 일본 소도시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느꼈던 점을 재치 있게 그려낸 것이다. 이어 영국에서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 다닐 때의 체험을 책으로 냈다. 또 한때 서커스단 광대로 열정적 삶을 살았던 모습, 유명한 컨트리 뮤직 가수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경험한 내용을 흥미 있게 엮어 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이블을 따라 걷는다(Walking the Bible·2001년 3월 초판)’라는 책이다. 여기서 그는 모세 오경(五經)의 이야기를 따라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아라라트 산에서 사해의 구석진 곳에 이르는 기나긴 여행을 하며 직접 경험한 감동을 전해준다.

‘중동의 화해(Abraham-A Journey to the Heart of Three Faiths·2002년 9월 초판)’는 앞서 출간된 책에서 보여줬던 바이블 전통에 대한 관심을 이어 받고 있다. 하지만 두 책 사이에는 9·11이 있다. 그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붕괴를 목격한 뒤 ‘바이블을 따라 걷는다’의 속편 집필을 연기하고 아브라함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서 9·11의 참상을 경험한 후, 아브라함인가? 아브라함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바이블과 코란에서 아브라함은 최초의 유일신 숭배자로 칭송된다. 세 종교에서 차지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각별한 위치는 세 종교를 ‘아브라함적 종교’라고 묶어 일컫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세 종교의 공동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해서, 그를 화해의 기반이라고 단순화할 수 있는가? ‘중동의 화해’가 지닌 미덕은 이런 단순화의 유혹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은 형제애의 근거가 될 수도 있고, 증오 분출의 핑계가 될 수도 있다.

페일러의 계산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240가지다. 그만큼 수많은 집단이 자기 이해에 따라 아브라함을 각색한 것이다. 모든 신앙에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아브라함부터 특정 신앙에 노골적으로 편을 드는 아브라함까지 아브라함은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페일러의 소망은 241번째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9·11의 참혹한 경험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페일러는 9·11을 “날마다 느끼는 중동지역 사람들의 두려움이 미국으로 온 날”이라고 평가한다. 그동안 공포에서 면제됐던 미국이 드디어 공포에 동참하면서 9·11은 사람들에게 보다 현실감각을 갖도록 해줬다는 것이다. 그가 지금 종교적 증오를 막기 위해 종교간 대화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이렇게 깨달은 현실감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호응을 얻어 베스트셀러가 됐고 ‘타임’지의 특집 주제가 되기도 했다. 곧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그 효과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종교학 skmjang@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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