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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현장에선 지금…]생산현장이 고령화한다

입력 | 2004-04-22 18:01:00


13일 울산 동구 방어동 현대미포조선 작업장. 일감이 지난해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때문인지 근로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힘찬 손놀림으로 신속하게 맡은 일을 처리하는 이들의 뒷모습은 20, 30대와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작업 중간에 잠깐씩 헬멧을 벗고 땀을 닦는 이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 강판을 정밀 가공하고 중장비를 가동하는 핵심라인에는 40, 50대 근로자가 더 많아 보였다.

현대미포조선에 따르면 이곳 근로자의 평균연령은 39세로 대우해양조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동종업계의 40∼43세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산업현장 고령화의 그늘=현대미포조선은 2001년부터 신규인력 채용을 줄이고 대신 기존 인력에 대해서는 노사협약에 근거해 ‘정년 은퇴’를 최대한 보장했다.

2000년 3239명이던 직원 수는 2001년 3934명으로 늘었지만 이후 신규채용을 줄이면서 2002년 3877명, 2003년 3867명으로 감소했다. 올해도 3850명 선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5년 동안 매출액은 7563억원에서 1조2436억원으로 70%가량 증가했지만 인력은 20%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조선업종 근로자의 고령화와 인원 감축은 세계적인 추세여서 신규인력 고용 전망이 밝지 않은 편이다.

작업장 크기와 매출 규모가 현대미포조선과 비슷한 일본 도요하시조선은 원가 절감을 위한 설비 자동화 등으로 현대미포조선의 7분의 1 수준인 500여명의 정규직 근로자만 고용하고 있다.

현대미포조선 이영덕 총무과장은 “중국 베트남 등 경쟁업체들의 노동비가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만큼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인근의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북미에 수출될 차량과 ‘투싼’ 등 일부 모델의 내수 주문량이 많아 대부분 라인이 24시간 풀가동되고 있었다.

협력업체 근로자를 포함해 3만1743명이 연간 150만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는 이곳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4년, 평균 연령은 38.7세이다.

현대차는 외환위기 전까지 매년 적게는 1000명, 많게는 5000명까지 인원을 충원했지만 이후에는 기존 인력을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매년 500명 미만의 신입사원을 뽑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박영훈 과장은 “협력업체에서 경력사원을 뽑는 경우가 많아 순수한 ‘신입’은 갈수록 수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30대가 부족한 중소기업=부산 사상공단은 최근 수출 호조로 작업물량이 늘었지만 숙련공들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공단 내 신발 섬유 철강 화학업체는 40, 50대가 주축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30대 근로자도 적어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상공업지역 기업인협의회 정삼열 회장은 “취업난으로 고학력 20대 구직자들이 예년에 비해 많이 공단으로 진출하고 있어 한편으론 다행이다”며 “그러나 여전히 30대 초중반의 핵심 기술인력은 부족하고 40, 50대는 많은 모래시계형 인력구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예를 들어 식품포장지의 경우 제대로 필름을 코팅하려면 고참의 도움을 받아 5년 이상의 숙련기간을 갖는 게 중요한데 나이차가 많으면 이런 연결고리들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성지기업 이명숙 사장은 “고참이 가진 핵심기술을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수받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공단의 고령화는 실업계고교 졸업생들이 제조업 현장을 외면하는 현실과도 관계가 있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시내 47개 실업고 졸업생 1만7195명 가운데 67.2%가 진학했다. 일자리를 찾아 취업 전선에 뛰어든 졸업생은 29.5%에 그쳤다.

▽고용시장 유연화가 열쇠=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조선업종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41.5세로 최근 10년간 5.6세 많아졌다.

또 철강 섬유 자동차 등 국내 주력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연령도 10년 전에 비해 4, 5세가 높아져 대부분 40세에 육박했다.

노동전문가들은 고임금 인력구조에 따른 생산성 저하가 머지않아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金定翰) 연구위원은 “신규 인력의 진입 장벽은 높고 기존 인력에 대한 보장은 강화되면서 고용질서가 계속 경직되고 있다”며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몇 년 안에 ‘고임금 저효율 체제’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국대 김태기(金兌基) 경제학과 교수는 “조선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은 도제 형태가 가미된 생산 작업이 많아 젊은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면 기술력 저하가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전문가 진단 ▼

“고용시장 유연성 확보가 인력구조 정상화 열쇠”

13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 5공장. 신모델인 ‘투싼’을 매일 37대씩 생산하는 이곳에는 20대 근로자가 유난히 많았다.

‘MP3’플레이어에 연결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일에 열중하는 이른바 신세대 근로자들도 눈에 띄었다. 쉬는 시간에 실내 휴식장에 삼삼오오 모여 배드민턴을 치는 이들의 모습은 역동적이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최근 ‘투싼’ 생산라인을 새로 정비하면서 경력 3∼5년차 미만의 20, 30대 근로자들을 대거 충원했다. 40대가 주축인 다른 모델의 생산라인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투싼 제조공정의 책임자인 문제갑 직장(職長)은 “특히 의장분야는 60% 이상이 젊은 근로자로 채워지면서 활기가 넘치고 있어 생산성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공정의 자동화 비율이 높아진데다 5, 6명 단위로 경험이 많은 조장을 두기 때문에 작업 공백도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이처럼 인력 재배치와 신규인력 충원, 아웃소싱 등의 방법으로 ‘제조 현장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공급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고용시장 유연성 확보와 직무 및 연령에 따른 임금 차등화, 임금피크제 도입 등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李禎一) 연구원은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바꿔 수당이 기본급보다 많은 형태의 임금 지급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며 “고용 조절이 여의치 않은 상황인 만큼 일정한 연령이 넘으면 임금이 낮아지는 임금피크제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또 “한 기업체 또는 한 제조공정에만 해당하는 ‘특수 숙련(firm-specific skill)’을 근로자에게 공유시키는 것보다 초기부터 여러 곳에서 범용기술을 습득하도록 유도하는 게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국대 김태기 경제학과 교수는 “시설이 첨단화하고 근로자의 학력도 높아져 기술 숙련시간은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단축시킬 수 있다”며 “숙련공의 경우 체력 부담이 심한 근로자의 임금은 높이고 관리감독직의 임금을 낮추는 방식이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