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월요포럼]류재갑/국제사회와도 대화와 타협을

입력 | 2004-04-18 19:08:00


“이제 사생결단 식의 대결정치보다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통합의 정치가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말은 권한정지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4·15총선 직전 출입기자들과의 등산 과정에서 토로한 말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국내적으로는 대동(大同)사회 건설의 필수조건이다. 이는 국내정치에서만 요청되는 것이 아니다. 대외정책에서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통합과 상생으로 나아가는 정치는 21세기 이 나라 국가 경영의 필수조건이다.

▼北核-파병 숙제 받아든 새 여당▼

이제 4·15총선은 집권당이 과반수 의석의 제1당이 되면서 막을 내렸다. 승리의 환희와 함성 뒤에는 엄중한 책임과 과제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은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우리에게 엄중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외적인 차원에서 당면 문제는 북한의 핵문제와 이라크파병 문제, 그리고 주한미군의 기지 이전을 비롯한 총체적인 한미동맹의 미래문제다. 새 여당 세력은 국제적인 상생정치의 차원에서 이렇게 견해가 상충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북한의 핵문제에 관해서는 핵기술을 국제 암시장에 판매했던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5년 전 북한의 비밀 핵시설에서 3개의 핵장치(사용 가능한 핵무기)를 목격했다고 파키스탄 정부에 밝힌 것으로 최근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정부는 이 보도의 진상을 좀 더 철저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진상 발표가 있기 전에는 이 보도에 대해 신중히 반응해야 하겠으나 그간 북한측의 ‘핵 공갈’이 거기에 바탕을 둔 것 같다는 의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작년 4월 30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담화를 통해 “비상시 취할 행동 조치를 예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6자회담에서나 남북한 장관회담 등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라크파병 문제에서는 열린우리당 내에서 벌써 “시기와 규모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민주노동당은 아예 ‘파병 철회’를 내걸고 있다. ‘동맹 지속’의 비결은 새로운 목표를 창출하고 역할과 임무 변용을 통해 비전을 공유하는 데에 있다. 한미동맹이 와해되는 경우 결과적으로 미일동맹을 강화시켜주는 반사적 효과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미국에 이라크파병은 비전 공유 차원의 중요 과제다. 장기적인 국익 우선의 시각이 요구된다.

한미동맹은 통일부 장관과 외교통상부 장관이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의 초석이고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토대다. 더욱이 21세기 동맹은 국제적 공공재(公共財)인 동시에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제레짐(제도)의 일환이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하나의 역사이기도 하다. 21세기의 동맹이 이익의 상호교환과 이에 대한 기대의 공유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라면, ‘기대의 교환’ 차원에서도 때로는 상대방을 위한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 기대를 상대방에게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국가의 최고책임자와 여당은 이제 확고하고 분명한 리더십으로 상호이익을 위한 ‘기대의 교환’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역동적이고 포괄적인 미래동맹’을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미동맹은 유익한 ‘미래투자’▼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미래에 대한 투자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 한미동맹은 한국의 가장 중요하고 유익한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국가지도층과 다수 여당은 이데올로기적인 감성의 정치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자세로 대외정책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세계로 향한 ‘열린 시대’가 아닌가. ‘열린 시대’는 무한한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 새 시대의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닫힌 창을 열어야 한다. 대외정책은 상대방을 죽이고 나만 살자는 것이 아니다. 대화를 통한 상생의 정치로 국가의 실익을 증진하고 국가의 위신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따라서 우방과의 ‘상생의 정치’는 새 여당과 정부의 대외정책에서도 중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류재갑 경기대 교수·국제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