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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사회학자 김진균 교수

입력 | 2004-02-15 18:54:00


14일 타계한 김진균(金晋均) 서울대 교수는 국내 사회학계를 현실참여적 학문으로 이끌어온 거목이었다.

1968년 서울대 상대 전임강사로 처음 대학 강단에 섰을 때만 해도 고인은 ‘테니스와 술을 즐기며 학문에만 매진하는’ 조용한 학자의 삶을 꿈꿨다. 그러나 혹독한 군사정권 체제는 고인을 진보학계의 맨 앞줄에 서게 했다.

그가 현실비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력의 가위질 때문이었다. 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된 뒤 학술지인 ‘경제논집’에 새뮤얼 헌팅턴의 ‘정치발전론’을 비판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을 거론한 글과 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을 보고 서울대학보인 ‘대학신문’에 기고한 글이 통째로 삭제당하는 경험을 겪었다. 결국 고인은 80년 지식인 134인 서명서와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문에 참여한 것이 빌미가 돼 해직됐다.

그러나 이는 80년대 민주화 이론의 산실로 불리는 ‘한국산업사회연구회’의 씨앗이 됐다. 고인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10평도 안 되는 창고 같은 건물에 ‘상도연구실’을 꾸렸으며 이곳에서 당시로서는 학계에서조차 금기시되던 ‘계급론’과 ‘민중’ 개념을 연구했다. 84년 고인의 복직과 함께 정식 출범한 ‘한국산업사회연구회’는 이후 사회학계의 등뼈가 되는 학자들을 길러냈다.

김 교수는 연구활동 이외의 현실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88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조직하면서 공동대표를 맡았고 94년에는 사회진보연대 대표를 맡았다. 고인은 학문과 현실 참여에서는 엄격했지만 따뜻하고 너그러운 품성 때문에 ‘느티나무’에 비유되곤 했다. 인터넷에 개설된 고인의 홈페이지(http://bulnabia.jinbo.net)에도 추모의 글이 계속 게시되고 있다. 고인은 2000년 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진보 진영의 각종 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진보에 대한 열정을 놓치지 않았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