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광화문에서]정동우/평준화, 어떻게 해야 하나

입력 | 2004-01-07 18:09:00


옛 고교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교사에게 맞았던 기억이다. 그 당시는 체벌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장딴지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어도 부모가 교사에게 항의하는 법이 없었다. 따라서 선생님께 맞아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선생님들에 대한 두려움과 미움이 졸업 후에는 점차 그리움과 존경심으로 변해갔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지역사회나 학부모가 요즘보다는 훨씬 더 학교와 교사들에 대해 신뢰감을 갖고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가 학생들에게도 자연스레 전이된 것 같다. 필자는 지금도 학교를 공격하고 교사를 비판하는 내용을 기사화하는 데는 매우 주저하는 편이다. 교사들에게 자존심과 긍지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으며 사회는 그것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교사의 긍지는 훌륭한 과실이 되어 바로 학생에게 돌아가게 될 터이다.

현재 사교육 문제와 고교평준화 유지 여부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4일 “사교육비를 줄여 근로자의 생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올해 1·4분기 중 공교육이 사교육을 흡수할 수 있는 교육개혁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과연 솔로몬의 해법과도 같은 대책을 내놓을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교교육 문제는 결국 대학입시와 관련되어 있고 이는 고교 평준화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공교육 개혁 논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현행 평준화의 틀을 깨고 완전 경쟁체제로 가자는 것이다. 재경부 등 경제부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그리고 정운찬 서울대 총장 등이 이 주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반면 현 평준화 체제를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선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육인적자원부 한국교육개발원(KEDI) 유인종 서울시교육감 등이 이 입장에 서 있다.

국제사회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데 우리만 평준화에 안주해 있어서는 국가의 장래가 염려된다는 전자의 주장에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반면 “성적에 따라 사람과 학교를 순서 짓고 학력 때문에 평생 인격적 자존심을 파손당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군포고 이성 교사 같은 분의 주장도 귀 기울여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런데 전국의 학생을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영재양성을 위한 일률적인 경쟁시스템 속에 몰아넣는 방식은 곤란하다. 민주시민의 기본자질을 함양하는 보통교육과 국가적 필요에 의해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영재교육은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추진하는 특목고 자립형사립고와 서울시교육감이 주장하는 학교 내 프로그램 개선 등을 통한 보완책은 분명히 숙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홍익대 서정화 교수의 지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고려와 논의 과정에서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의 입장과 견해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전례를 볼 때 교사와 학교가 존중되지 않고 이들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게 하는 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동우 사회1부장·부국장급 fo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