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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로젝트]中윈난성 '샹그리라'보존

입력 | 2003-10-02 18:08:00


‘샹그리라(香格里拉·shangrila).’

이상향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초모랑마(珠穆郞瑪·에베레스트) 동쪽으로 끝없는 설산을 넘어 칭짱(靑藏)고원 끝자락에 자리한 중국 윈난(雲南)성 디칭(迪慶) 짱(藏)족 자치주. 해발 6740m의 메이리(梅里) 설산의 장엄한 자태를 배경으로 양쯔(揚子)강 상류인 누(怒), 란창(瀾滄), 진사(金沙) 등 세 강이 나란히 흐르는 천년절경의 비지(秘地).

올해 유네스코는 일찍이 불국정토(佛國淨土), 즉 ‘샹그리라’라고 불려 온 이곳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샹그리라의 중심으로 알려진 ‘메이리 설산’과 그 아래 더친현 티베트 마을. -동아일보 자료사진

샹그리라가 신비의 베일을 벗고 외부 세계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33년. 영국인 소설가 제임스 힐턴(1900∼1954)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의해서였다. 창세기 신화의 무대인 ‘에덴동산’과 달리 현세에 존재하는 인류의 낙원. 온갖 종교가 화합 공존하며 인간의 갈등과 탐욕이 없는 곳. 샹그리라는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찌든 서양인들에게 낙원의 꿈을 불러일으켰다.

소설은 1937년 미 컬럼비아 영화사에 의해 영화로 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무르익던 시기에 서양인들은 구원의 빛을 샹그리라에서 찾았다.

1942년 전쟁에 지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메릴랜드주에 지은 대통령 별장을 샹그리라로 명명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캠프 데이비드 별장이다.

서양인들에게 이상향을 소개한 힐턴은 정작 샹그리라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는 소설의 소재를 윈난성의 중뎬(中甸·현 샹그리라) 더친(德欽) 등 디칭 짱족 자치주를 여행했던 유럽과 미국, 러시아 탐험가들의 기록에서 찾았다.

1942년 일본군이 버마(미얀마)를 점령하고 충칭(重慶)의 장제스(蔣介石) 군을 압박하면서 미군은 ‘버마루트’ 대신 인도에서 티베트를 거쳐 윈난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항공로를 개척했고 수많은 군용기들을 이름 모를 계곡에서 잃었다. 해발 4000∼5000m의 험난한 설산을 통과하는 이 항로는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속의 주인공들이 납치됐던 항로였다.

그러나 샹그리라는 냉전시대 중국이 서구와 격리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1990년대 들어 ‘세기말’ 풍조가 일면서 사람들은 다시 샹그리라를 떠올렸다. 과학 발전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비인간화 공업화로 인한 환경 파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만년설과 시리도록 푸른 하늘, 드넓은 초원, 자연과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다.

하지만 중국은 디칭 자치주를 1992년까지 대외에 개방하지 않았다. 변경에 위치한 소수민족에 대한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다. 그 사이 인도 네팔 부탄 등은 저마다 히말라야 산록의 한 마을들을 정해 샹그리라라고 이름 붙였다.

마침내 중국도 샹그리라를 찾아 나섰다. 1996년 중국 정부는 민속학자, 종교학자, 언어학자, 지리학자, 역사학자 등 50여명의 국내외 전문가들로 ‘샹그리라 탐사대’를 구성했다. 탐사대는 윈난성, 쓰촨(四川)성, 티베트자치구 등을 샅샅이 조사했다. 힐턴의 소설에 나오는 설산과 대초원, 강과 협곡, 원시삼림, 다양한 동식물, 티베트 불교 등이 탐사 기준이었다.

이들은 마침내 디칭 자치주의 중뎬현이 소설의 무대와 똑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 정부는 2001년 12월 중뎬현을 샹그리라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삼림 채벌을 완전 금지했다. 1997년 60%였던 삼림 면적은 지난해 80%로 넓어졌다. 다와츠리(達瓦次里) 디칭 짱족자치주 관광국장(43)은 “개발을 엄격히 제한하고 수자원 및 생태자원 보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원시삼림과 다양한 생물, 대협곡 등이 산재해 있는 디칭 자치주와 주변 지역을 샹그리라권으로 지정해 자연과 문물을 보존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티베트족의 전통 예술, 민속과 종교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샹그리라는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1995년 7만명에 불과하던 관광객이 지난해 중국인 150만명, 외국인 10만명으로 급증했을 정도.

그러나 외부인들이 몰려오자 샹그리라의 순박했던 풍속과 아름다운 자연이 오염되고 있다. 상업성에 물들기 시작해 꿈속에 그렸던 이상향과 다르다면서 실망을 안고 돌아가는 관광객도 있다. 중국 당국은 관광객 쿼터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실 속의 이상향은 없다. 이곳을 인류의 낙원으로 생각하고 찾아온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샹그리라는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마음속에서 이상과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여러 소수민족이 화합하고, 불교 도교 유교 천주교가 공존하며, 대자연을 숭배하는 이 곳에서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와츠리 관광국장은 “샹그리라는 종교간의 화합, 인간과 자연의 공존, 무욕(無慾)과 중용(中庸)의 도를 가르치는 ‘정신적’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샹그리라=황유성특파원yshwang@donga.com

▼우연히 들어간 낙원서 공주와 사랑에 빠져 ▼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푸른달의 계곡’의 무대인 샹그리라 대협곡. -샹그리라=황유성특파원

1930년대 초 인도의 바스쿨(현 파키스탄)에서 주민 폭동이 일어난다. 영국 영사 콘웨이와 부영사 멜린슨, 천주교 동방전도사 브링클로(여), 미국인 바너드 등은 소형 비행기를 타고 현지를 탈출한다. 비행기는 티베트 젊은이에 의해 납치돼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베트인들이 사는 ‘푸른달의 계곡’이라는 거대한 협곡에 불시착한다. ‘푸른달의 계곡’은 주변을 둘러싼 설산(雪山)과는 달리 푸른 초원과 갖가지 꽃과 풀, 비옥한 토양, 무한대의 금광(金鑛)이 있는 ‘세외도원(世外桃園)’.

비행기를 조종한 젊은이는 불시착 직후 ‘샹그리라’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들은 영어를 하는 장(張)이라는 한족(漢族) 노인에 의해 인근 라마사원으로 안내된다. 콘웨이는 이곳에서 ‘페로’라는 프랑스 국적의 천주교 수도사와 만주국 공주 ‘로센’을 만난다.

샹그리라는 천주교 불교 도교 유교 등 각종 종교가 공존하며, 사람들간에 갈등과 분쟁이 없고, 중용(中庸)의 미덕을 숭상하며, 사람들이 장수하는 곳. 콘웨이는 80대 노인 페로가 실제는 300세가 가깝고 18세로 보이는 로센은 90세가 넘는다는 말을 듣는다.

납치된 3명 모두 샹그리라에서 자신들의 꿈을 발견하지만 멜린슨 만이 이곳을 벗어나려 한다. 콘웨이는 멜린슨의 간청에 못 이겨 멜린슨 및 그와 사랑에 빠진 로센과 함께 샹그리라를 탈출한다. 로센은 현실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본래의 나이인 90세로 되돌아가 숨지고 만다. 뒤늦게 콘웨이는 잃어버린 낙원으로 되돌아가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샹그리라는…▼

티베트 언어학자들은 샹그리라(香格里拉·shangrila)의 뜻을 두 가지로 풀이한다. 샹(香)은 ‘마음’, 그(格·중국어 발음은 거)는 ‘∼의’, 리(里)는 ‘태양’, 라(拉)는 ‘달’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 된다. 또 다른 해석에 따르면 샹그는 ‘흰 달빛’, 리라는 ‘태양’을 의미하며 중뎬(中甸·현 샹그리라)현의 고성(古城) 이름인 일월성(日月城)을 가리킨다는 것.

샹그리라는 티베트불교 경전에 나오는 ‘샹바라(香巴拉)’의 중뎬 지방 방언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샹바라는 ‘불국정토(佛國淨土)’ ‘피안(彼岸)세계’, ‘이상향’을 뜻한다. 윈난(雲南)성 서북부 디칭 장족(티베트족) 자치주의 해발 1503∼5545m 고원지대에 위치한 중뎬현을 샹그리라현으로 부른다. 현 인구는 12만여명이며 티베트족이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