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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세이]권준욱/‘사스 퇴치’ 선진국이 되려면

입력 | 2003-09-22 18:25:00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인류의 역사는 신종 전염병의 등장과 이에 대한 인간의 대응으로 점철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30년간에도 에볼라열, 마버그열 등 20종이 넘는 신종 전염병이 등장했다.

특히 중국 남부는 비위생적인 생활 습관과 주거 환경 때문에 사람 조류 가축이 서로 접촉하면서 병원체를 주고받는 지역이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온갖 야생동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사스 등장의 무대가 된 것이다.

사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진단기술이 발달하고 환자 치료 실적이 쌓이면서 그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아마도 올 하반기 이후에는 매년 늦가을부터 초여름까지 유행하면서 폐렴을 일으키는 여러 바이러스 중 하나 정도로 위력이 떨어질 전망이다.

다만 사스 등장 이후 처음 맞는 올겨울에는 아직 사스에 대한 공포가 남아 있고, 인플루엔자와 동반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철저한 방역 대책이 요구된다.

사스와 같은 질병의 경우 대규모 유행을 일으키는 순간에야 이를 발견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9월 초 싱가포르의 예처럼 단 1명의 환자도 초기에 발견하는 국가가 있다. 문제는 사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다. 아마 10월 말이나 11월 초부터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인플루엔자의 유행 시기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에서 사스가 유입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사스 위험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류가 잦은 데다 사스 자체의 긴 잠복기 및 짧은 비행시간 등의 요인으로 인해 국내에 유입되는 것 자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조기발견과 2차 전파방지에 애써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철저한 검역이 중요하다.

앞으로 사스주의보 이후에는 위험 국가에서 귀국할 때 작성하는 검역설문서나 체온측정에 정직하게 응해야만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사스 유입을 막을 수 있다. 매달 사스 환자 5명의 국내 유입을 놓칠 경우 30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스 예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손씻기다. 손을 자주 씻고 개인용 수건으로 닦는 간단한 개인위생 지키기가 사스를 막아줄뿐더러 인플루엔자, 유행성 눈병, 이질 같은 수인성 전염병도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학교 학원 음식점 등 다중이 이용하는 곳에는 공동타월이 아닌 개인용 종이타월을 비치해야 한다.

둘째는 사스가 본격 유행하기 시작하면 철저한 신고가 중요하다. 사스 위험국가를 다녀왔는데 열이 나는 등 이상하다 싶으면 가까운 보건소 등에 알려야 한다.

셋째, 기타 개인위생 준수다. 침을 함부로 뱉지 말고 기침이나 재채기도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손이 아니라 팔뚝의 옷깃에 하는 등의 철저한 위생의식으로 사스를 예방할 수 있다.

세계인들의 뇌리에는 월드컵 4강이나 올림픽 메달 수보다 사스 방역에 성공한 한국(또는 실패한 한국)의 이미지가 더 깊이 각인될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무엇을 새기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선 적정한 인력과 조직,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는 소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쳤지만, 이제는 남들이 소를 잃는 것을 보고 우리가 먼저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어떨까. 사스 이후에도 제2, 제3의 신종 전염병이 우리를 위협할 테니까.

권준욱 국립보건원 과장 WHO에이즈·결핵·말라리아 관리국 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