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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여당 실종' 사태]“黨政협의 누구와 해야하나”

입력 | 2003-09-08 18:36:00

국회 본회의장 전경. 민주당의 분당 사태로 사실상 집권여당이 없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새해 예산안 처리 지연 등 국정 운영이 혼란에 빠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민주당 분당(分黨)사태의 불똥이 일선 정부 부처로 튀고 있다. 민주당 신주류가 신당 창당을 사실상 선언한 반면 다른 상당수 의원은 ‘민주당 사수(死守)’를 다짐하자 당정협의의 파트너인 행정부처 공무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법적으로 여당인 민주당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마음’과 통할 것으로 보이는 신당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이번 사태가 예산심의와 국정감사, 세법(稅法) 등 각종 중요 법안 처리가 예정된 정기국회가 임박한 가운데 벌어져 더 곤혹스럽다는 표정이다. 많은 공무원들은 “무(無)여당 체제든, 두 개의 여당 체제든 이에 따른 정책 혼선과 행정 낭비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

청와대는 민주당 분당 사태의 급진전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단 각 정당에 협조를 구하는 수밖에 없으며 총선 뒤에 의석 분포 등을 봐서 각 정당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호선(千晧宣) 정무기획비서관은 “신당 문제가 갑자기 속도가 빨라져 당혹스럽다. 일단 한나라당, 민주당, 신당 등 3당과 모두 협의하는 체제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미국식 대통령제 운영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 사태와 무관하게 한나라당과도 정책 협력관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민주당이 2개의 정당으로 완전히 쪼개지는 경우에 대비해 △노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해 무당적 상태로 3당과 사안별로 협력하는 초당적 국정운영 방안과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되 신당과 정책공조 관계를 설정해 ‘2개의 여당’과 국정을 운영하는 방안 등을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부처▼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오전 정세균(丁世均) 민주당 정책위의장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협의했지만 정 의장이 신당파에 포함된 탓에 다시 누구와 당정협의를 해야 하는지를 놓고 당황해 하고 있다.

공정위 당국자는 “오늘 아침까지도 정 의장이 자신을 민주당 소속이라고 밝혔다”며 “일단은 당정협의를 한 것으로 돼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야당과 재계가 계좌추적권 연장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고 있는 탓에 여당이라도 힘을 보태 주길 바랐지만 여당 정책위의장이 당을 옮기는 상황인 만큼 정부측 의견대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는 관측이 많다.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예산처는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이번 분당에 따른 혼선으로 큰 어려움울 겪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안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뚜렷한 정당이 없어 정부안(案)에 힘이 덜 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배철호(裵哲浩) 예산처 기획관리실장은 “이제는 당마다 각각 가서 정부안을 설명해야 한다”며 “아무래도 행정절차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팀 수장(首長) 부처인 재정경제부도 주요 정책방향을 잡을 때 어디와 먼저 협의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다.

이미 제출된 세법개정안이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도 어느 쪽을 상대로 집중 설명하고 방어를 해야 할지 애매해진 실정이다. 사실상 정부에서 파견됐지만 형식적으로는 공무원 직위를 버린 윤대희(尹大熙·1급 상당)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의 거취도 고민거리다.

○…현안이 산적한 건설교통부는 가장 당혹스러워 하는 부처 가운데 하나. 한 간부는 “구 민주당 중심으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신당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고 털어 놓았다. 건교부는 특히 경인운하,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터널공사, 경부고속철도의 천정산·금정산터널공사 등 3대 국책사업이 대부분 국회와 협의가 끝난 상태지만 이번 사태로 다시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을 준비 중인 농림부는 여당 분당으로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른 농민 피해를 보상해 주는 종합대책 추진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김주수(金周秀) 농림부 차관보는 “민주당이 분당되면 신당과 별도 정책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당정 협의 절차가 다소 복잡해질 것”이라며 “지금까지 여당과 가졌던 원활한 협조 체계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자원부는 삼성전자의 경기 용인시 반도체 공장 증설, 위도 원전 수거물 처리센터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긴밀한 당정협의가 필수적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여당이 분당되면 정부가 의지할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회부처▼

○…노동부는 당정협의가 제대로 안돼 당장 10월 정기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공무원노조법과 퇴직연금법, 비정규직보호법안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 한 과장은 “‘행정공백’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책의 방향을 잡기가 어려워져 당혹스럽다”며 “앞으로는 당정협의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개개인을 접촉하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어 일거리도 많아지게 됐다”고 푸념했다.

○…행정자치부는 정부조직법, 지방분권특별법, 주민투표법 등 국가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법안 제출에 앞서 여당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수적이지만, 민주당이 분당될 경우 당정 간 조율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

또 한나라당이 이번 국감 기간 중 김두관(金斗官) 장관의 주요 정책에 대해 ‘손보기’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민주당까지 분당될 경우 ‘방패막이’마저 없어질 것을 내심 우려하고 있다.

○…법무부는 검사들의 상명하복 규정을 일부 개정한 ‘검찰청법’과 호주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 ‘민법’ 등의 주요 법 개정안이 정기국회에서 잘 통과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검찰청은 이번 국감이 여야의 처지가 뒤바뀌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검찰에 대한 야당의 공세를 여당 의원들이 막아 주었지만 올해엔 이 같은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편집국 종합